「남녀의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역할을 규정한 이는 남성이며 역사에 기록된 사건일지라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고로 여과해서 기록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문제는 기득권을 가진 남성의 배려와 주도권과 도움 없인 불가능하므로 감히 「남성의 숙제」로 맡긴다」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남인숙 교수가 92년부터 94년까지 3년간 여성학 강의를 수강한 대학생 3천여명으로부터 제출받은 과제물을 선별해 엮은 「한국 남성의 숙제」(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출판부 발행)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과 폭력이 멈추지 않고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제1부에서 우리나라 여성문제의 현주소를 간략하게 정리한 뒤 2부 「여성에 대한 남성의 태도」, 3부 「나의 어머니」에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젊은 세대와 그들의 어머니들이 받는 억압과 폭행을 고백하고 있다.
특히 원래 「페미니즘 시각에서 본 선생님들의 태도」 혹은 「여성이기에 당하는 불이익」이라는 제목의 과제물을 정리한 제2부에서는 뜻밖에도 선생님들의 성추행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그중에는 「설마」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비도덕적인 내용들이 포함돼있다.
「3천여명의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은 모두 자신의 이름과 학년을 밝힌 글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많은 부분은 밝히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무기명으로 쓴 글이라면 더 충격적인 내용들을 고백했을 것입니다」
이 책이 던져주는 충격은 도덕성의 표본으로 삼고 있는 교사, 교수들이 어린 학생들에 대한 성추행, 폭력,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주인공이었다는데 있다.
남교수는 과제물 내용중에 「뜻밖에도 선생님에 의한 성추행이 너무 많아 당황하면서 대폭 줄였다」면서 「저학년으로 갈수록 선생님 외에 다른 남성을 대하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지만 선생님이 이 정도라면 다른 남성들은 오죽 하겠는가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은 20세 전후의 젊은 여성들에게 50세 전후 어머니 세대가 살아온 여성으로서의 삶은 또 다른 세계이다. 아직도 남성중심의 가부장 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을 경험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런 경험이 어머니 세대의 삶과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을 알고 있다.
남교수는 「가장 가까이서 20여년간 바라본 어머니에 대한 딸의 경험은 그 어느 학자의 현장 연구보다 진솔하고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며 「만약 여성의 권리와 인격에 대해 체계적으로 간과되어 이루어진 우리의 가부장제도가 어머니에게 고통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억압」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가부장제의 역사적 전통안에서 「현모양처」라는 허울 아래 여성에게 행해진 「억압」이 제3부에서 다양한 삶의 행로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성 차별의 뿌리는 깊고 넓다. 한국 사회안에서 과거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정도의 여권신장이 실현됐다고는 하나 아직도 사회전반에 남성중심 가부장제의 틀은 여성의 가정, 사회안에서의 존재에 억압과 차별을 가하고 여성의 도구화, 상품화된 가치가 지배적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저자는 그런 차별과 억압의 해소를 여성자신에게서는 물론 「남성의 숙제」로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은 이미 거의 모든 면에서 기득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부드러움과 사랑이 사회 전반에 풍부하게 확산될 때 폭력적 가부장제는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성의 특성과 지위, 품위에 걸맞는 정도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주어져야 합니다. 특히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교회 안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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