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한복판의 조그만 섬 몰로카이에서 평생을 나환우들과 함께 살았고 마침내 자신도 나병으로 숨을 거둔 다미안(Jozef De Veuster) 신부가 6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다.
다미안신부는 1840년 벨기에 브뤼셀 근처 조그만 시골로 트레멜로의 한 농가에서 일곱중 네 번째로 태어났다. 전형적 농부이자 경견한 신앙심을 가진 부모 아래 성소를 키운 그는 형과 누이의 뒤를 따라 수도생활에 헌신하기로 결심, 1859년 형 팔필 수사가 속해있던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회」에 입회한다.
1863년 장티푸스에 전염돼 하와이 선교를 떠나지 못하게 된 형 팜필 신부를 대신해 6개월간의 항해 끝에 1864년 3월 일생을 바칠 선교지에 도착한 그는 그해 봄 호놀룰루의 대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하와이의 푸노라는 작은 지역을 임지로 사목활동을 시작한다. 1865년 코할라로 임지를 옮긴 당시 섬 일대에는 나병이 나돌았다. 원래 나병은 이섬에 없었던 질병이지만 일단 창궐하기 시작하자 무서운 속도로 펴져나가 하와이 정부는 나환우 격리를 위해 몰로카이섬 한켠에 격리지를 마련, 1백41명의 환자를 수용했다. 하지만 여러섬에서 나환우는 급속히 늘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교회는 몰로카이 섬 상주신부를 요청했고 다미안 신부는 여러차례의 탄원 끝에 허락을 얻어냈다.
격리지로 가는 배안은 참혹했다. 환자들의 지독한 악취와 일그러진 형상, 가축울음소리와 사람의 신음이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비참함, 희망 없는 미래로 인한 환자들의 몸부림등. 하지만 「저주받은 섬」, 몰로카이의 참상은 이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도착은 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다미안 신부는 그후 8주일 동안을 커다란 고목나무밑에서 햇살을 피하고 밤을 새워야 했다.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물길을 만드는 일이었다. 식수조차 제대로 없는 이들은 손을 씻을 수도 없었고 상처를 닦아낼 수도 없었다. 험한 산속을 헤치며 수원지를 찾아낸 그는 물을 마을로 끌어낼수 있는 파이프를 얻기 위해 보건당국과 수없는 싸움을 해야 했다. 다미안 신부는 엉성하게 지어놓은 오두막집을 개량, 새로 집을 짓도록 했고 성당, 병원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그는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이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손수 약을 들고 다니며 뭉그러진 살점위에 정성으로 약을 발라주었고 끝없이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위해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저주받은」 사람들로만 여겨졌던 나환우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씩 바뀌었고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다미안 신부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싹텄다. 1881년 하와이 정부는 그의 영웅적 행동에 찬사를 보냈고 훈장을 수여했다.
나환우들을 위한 희생은 1885년 자신이 나병에 감염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어느날 뜨거운 목욕물을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쏟은 그는 뜨거움보다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감각의 상실, 그것은 확실한 나병의 증상이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비로소 「나병환자들과 같은 못으로 같은 십자가에 못박힌 느낌」이었다. 그를 염려한 호놀룰루의 주교가 치료를 위해 섬을 나오라고 했을 때 그는 『만일 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섬을 떠나 제가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면 저는 성한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1888년 그의 뒤를 이을 신부들과 수사, 그리고 수녀들이 몰로카이섬에 도착한다. 1889년 3월 다미안 신부는 손가락의 상처로 더 이상 미사를 드릴 수 없게 되고 4월 15일 그의 영혼은 그가 사랑했던 몰로카이섬의 나환우들 곁을 떠났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