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 계속】
『꼴값을 하라』는 말이 있다. 「꼴」이란 생김새나 됨됨이를 나타내는 말이요, 「값」이란 가치 또는 값어치를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꼴값을 하라는 말은 자기 됨됨이에 맞는 행동을 하여 그 신분이 요청하는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라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참 좋은 말인데 욕처럼 쓰이는 이유는 이 말이 꼴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쓰여져왔기 때문이리라.
『행위의 존재를 따른다(Agere sequitur esse)』란 말도 실상 같은 뜻이다. 이 말은 나는 이러이러한 존재이므로 그에 걸맞게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즉 나의 신분(신원, identity)과 삶은 일치를 이루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분열을 체험하지 않고 조화와 평화를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신분이 세례받은 하느님 아들이라면 나의 삶도 그에 걸맞는 삶일 때 나는 하느님, 이웃,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화목과 안정,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은 우리의 삶의 모습과 관련된 하느님의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부르심이다. 그러므로 계명에는 하느님의 의지, 그분의 인간사랑이 반영되어 있으며 인간은 그 역시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적 존재로서 하느님의 계명에 책임을 지고 응답한다.
즉 인간이 하느님의 계시에서 윤리적 계명을 발견해 내고 거기에 순명하는 것은 노예적 순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적 존재가 스스로 하느님의 초대에서 자신의 응답의 길을 감지하여 의지적이고도 책임감있는 결단을 내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계시를 통한 하느님의 초대와 부르심은 모든 시대,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지며 인간은 누구나 그 초대를 깨달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은총의 도우심으로 그 초대를 더욱 민감하게 감지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하느님이 천지만물의 창조주시라는 것을 여러 형태의 계시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면 그 초대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모습들의 응답을 해야 할 것이다.
나를 포함한 천지만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깨닫기, 따라서 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존중하기, 자연을 사랑하기, 인간이 우주만물을 착취하고 소진할 권리는 없음을 깨닫고 잘 관리하여(stewardship) 인간의 참된 성장을 가져오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태아ㆍ기형아ㆍ장애아 등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따라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 대한 자연과학의 개입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함을 깨닫고 가르치기 등이다. 이런 종류의 응답을 우리는 『창조세계에 관한 하느님 계시에의 응답』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학으로서의 생명윤리가 위치한 자리를 보게된다. 즉 생명윤리신학의 자리를 찾기 위하여 우리는 위에서 (연재 7~8 참조) 지루하게도 계시의 의미, 계시와 그리스도교 윤리, 윤리에 있어서의 그리스도 중심주의, 책임의 윤리, 창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응답 등을 훑어 보았다. 이렇게 볼 때 생명윤리를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하느님이 인간생명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창조와 관련되어 인간에게 부여하신 소명에 대한 응답을 궁구하는 윤리신학의 한분야』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생명윤리에 대한 이 신학적 개념정의는 비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설득력이 없으므로 그들에게는 어떤 정의가 요구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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