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지금까지 제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셨고 그들과 함께 사신 그 자체가 제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죽음을 눈 앞에 둔 마지막 순간에 와서는 당신의 죽음과 죽은 후에 일어날 일들이 너무나 가혹하여 제자들이 혹시나 걸려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부터 그들이 세상에서 겪을 일들과 박해와 환난속에서도 예수님을 대신할 보호자가 있을 것이라는 확약을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들을 (요한15,18~27) 한 것은 너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이 생생하게 박해의 정황을 설명하시는 것은 처음부터, 즉 제자들과 전교를 시작할 때부터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믿음의 뿌리가 깊지 않았고 사명감이 희박했을 제자들에게 박해의 위협을 주지 않고 같이 살면서 점차적으로 그들의 사명에 대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예수께서는 당신의 수난예고를 처음에는 상징적으로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는 말씀을 하실때. 대목 33참조), 비유적으로 (밀알하나가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 요한 12,24=대목 284), 그리고 수난예고 (대목130,137,267 참조)의 말씀으로 하셨다.
이제는 그 수난의 순간이 다가왔고 제자들의 수난은 주님과의 작별로 시작한다.「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 간다」. 이 작별은 같이 있다가 헤어지는 작별이 아니고 예수께는 영광으로 돌아가는 작별이며 제자들에게는 주님대신 하느님의 일을 맡게 되는 시간을 알리는 작별이다. 「보내신 분께 돌아 간다」는 말씀은 주님의 죽음의 뜻을 말씀하시는 대목으로 벌써 여러번 말씀하셨다(요한, 33:13, 33.36:14, 2.3.4.5.12.28)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한 제자들은 그저 주님의 임박한 떠나감이 주님의 죽음이라는 것만 알아 듣고 몹시 슬픔에 잠겨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주께서 어디로 가시느야고 물을 겨를도 없었다. 「너희는 나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 않느냐」라고 말씀하신것은 책망의 말씀이 아니다. 이 물음은 이미 베드로 (요한13,36)와 토마(요한14,5)가 여쭈었었다. 지금은 예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그 「어디」가 어디인지를 제자들이 꼭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이 아버지께서 계시는 곳이며 그곳에 가신다는 것은 앞으로 예수를 대신하여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이끄실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을 뜻한다. 제자들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예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데는 예수없이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요한15,5). 그러니 예수께서 떠나 가신 후에는 예수 대신 그들을 도와 줄 성령이 협력자로 오실 것이다. 그분이 오시면 세상이 저지른 죄를 꾸짖고 깨뜨린 정의를 되돌리고 그릇된 심판을 바로 잡아 주실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
올바른 말씀을 믿지않고 선행을 악행으로 뒤집어 씌우고 빛을 비추어 주어도 어두운 길을 걸으며 무고하게 구세주를 죽이면서 영원히 씻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이것이 예수를 믿지 않은 죄이며 하느님의 영원한 분노를 샀다(요한3,36). 성령이 오시면 세상이 예수를 처형하면서 외친 정의가 천부당 만부당한 불의였음을 밝히고 올바른 정의를 세워 주실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처형하면서 아버지와 하나라고 주장했다 해서 (요한5,18:7,12:9,24:10,33)죄인, 신성모독한 자로 몰아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 영광을 받는 관문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릴 것이다. 「그분은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고 성령의 힘으로 그분의 올바른 정체가 입증되었으며…그분은 만방에 전해져서 온 세상이 그분을 믿게 되고 영광을 받으며 승천하셨다」(디모 전3,16).
이렇게 거만한 자들의 눈은 아래로 깔리고 만군의 주님은 올바른 자리로 높아졌다(이사5,15~16). 믿음으로 주님을 따른 사람들은 주님이 떠나가심으로 그분을 보지 못하게 되겠지만 성령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된 그분을 믿음으로 뵐 것이며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때에 천상 거주지로 같이 따라 가게 될것이다(요한 14,2~3:17,24).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것은 예수와 원수들의 싸움에서 원수들이 이긴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께서는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 가 영광을 받으셨고 바로 이 사실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조종하던 사탄의 패배를 극명하게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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