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혈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인간 구원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그것은 구약의 계약 의식과 긴밀한 연관이 되며 되며 또한 신약 역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그 본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통상 말하는 구약(구계약)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에서 모세를 통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말합니다. 이때 백성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피의 예절로 했습니다. 즉 송아지를 잡아서 하느님을 표상하는 제단에 피의 반을 뿌리고 나머지 반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겠다는 백성에게 뿌렸습니다.
여기서 한 쪽이 계약을 어기면 막말로 피를 봐야 합니다. 다시말해 하느님 앞에 목숨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수없이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배반하고 또 배반했습니다. 백성은 그래서 당연히 목숨을 바쳐 피를 흘려야 하지만 그러나 목숨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목숨 대신 수송아지나 염소 혹은 양이나 비둘기 두마리로 속죄의 제사를 지녔던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의 죄는 너무도 극에 달해서 이제 동물의 피만 가지고는 하느님의 의노를 풀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속이고 또 속여서 하느님을 수없이 속여 왔기때문에 이제는 짐승의 피는 억만 마리를 바쳐도 소용이 없게 됐습니다. 아니, 세상에서는 인간의 죄에 대한 제물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구제불능이었습니다. 여기서 새 계약이 필요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 계약은 시나이의 계약과는 다르다고 했습니다(예레31, 31~34참조). 에제키엘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새 마음을 넣어 주며 새 기운을 불어 넣어 준다고 하면서 새 계약을 통하여 성령을 부여하신다는 의미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에제 31, 26~27참조).
그럼 새 계약이 언제 이루어졌느냐? 바로 예수님이 당신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새 계약을 체결하시는데 그 말씀이 최후만찬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르 14, 24)하셨고 루가와 바오로도 「이것은 내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루가 22, 20:1 고린11, 25)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은 인간을 무척이나 사랑하십니다. 백성은 감히 바라지도 못했는데 당신께서 일방적으로 「너희는 나의 백성이며,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다」라는 계약에 충실하도록 종용하셨고 그래도 백성이 고집을 피우자 새 계약을 말씀하시면서 끝내는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들을 세상에 보낸다는 것은 그 아들을 제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말해 사람들이 그 아들을 잡아 죽일 줄을 뻔히 아시면서도 당신의 아들을 파견하셨고 그리고 그 피를 통해서 새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백성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피를 봉헌해서 얻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이를테면 맞바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빵 다섯개를 가지고 남자만도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실 때는 그렇게 풍성합니다. 째째하거나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빵의 기적은 메시아의 풍요로운 징표로 보여준 것이면서 동시에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음식으로 주시는 계약의 식사를 보여준 것입니다.
미사는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 사건을 기념하는 새 계약의 예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봉헌되시는 계약의 체결을 미사안에서 새롭게 거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뜻으로서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 19:1 고린11, 25 참조)고 하셨던 것입니다. 미사는 일종의 하느님의 사랑의 잔치요 제사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밥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맛좋은 술로 오셨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면 그와 함께 머물고 그와 함께 지내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인간을 찾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분은 먹히려 오셨고 먹힌 상태에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구원을 주십니다. 당신의 전 생명을 오늘도 그분은 우리에게 제공하십니다. 그것도 무료로.
우리는 그래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우리 삶안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구해진 백성이요 목숨인데 이 은혜를 우리가 알고 있다면 그분을 위해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분이 원하신다면 무슨 사랑을 못하겠습니까? 우리도 먹히는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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