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에서 (정의 2) 생명윤리를「윤리철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생명윤리 문제들의 비판, 해석 및 해결은 관련 풍습, 법, 전통에만 의거할 것이 아니라 인간 생명에의 간섭과 관련된 윤리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이고도 성숙된 철학적 방법론에 의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생명윤리 관련 문제에 부딪칠 때 현행법이나 전통, 풍습에 비추어서만 행위의 수용여부를 가릴 것이 아니라 윤리철학의 방법론에 따라 그 행위의 합법성 여부, 선 또는 악, 가치 또는 비가치를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 즉 어떤 생명윤리 관련 행위에 대한 윤리적 고려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함께 하는 이성의 고찰에 의하되 그것을 자연과학 등 여타 학문의 방법과 기준으로써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진리 탐구를 위한 학문(철학)의 모습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생명윤리 관련 문제를 접할 때 우선적으로 무엇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위에서 생명윤리를 윤리신학의 한 부분으로도 본 바 있다. 윤리철학은 인간이성을 근거로 인간 성숙을 위한 가치와 규범들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그러면 신학은 인간이성과 무관하게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 학문인가? 여러 갈래의 신학(성서신학, 윤리신학, 교의신학......)들 역시 하느님의 계시를 이성적이고도 합목적적으로 정리, 체계화한 것이다. 즉 신학은 창조주 하느님의 무한한 지성을 선물로 나누어 받은 인간의 지성에 의한 작품이다. 이렇게 볼 때 철학과 신학은 모두 이성의 학문이다. 구태여 그 차이를 지적한다면 신학은 하느님의 말씀을 근거로「신앙의 조명을 받은 이성」이 이루어내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이 인간생명에 관한 개입행위의 윤리성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 먼저「신앙의 비추임을 받은 이성」을 통해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순수 이성적, 철학적 고찰에 머무는 생명윤리 철학만으로써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의 조명을 받은 신자 각자의 지성만으로 모든 윤리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학문적 접근(윤리신학)에 의존해야 하고 교회 전통과 교도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본 연재는 당연히 생명윤리의 제 문제들을 윤리신학의 전망에서 다루어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윤리는 본 연재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 중심의 윤리, 복음화의 윤리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만인공유의 이성에 근거한 윤리학은「생명현상과 그에 대한 인간적 개입에 관한 그리스도교 윤리신학의 반성」 이 도출하는 결론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신앙은 결코 상반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하여 우리를 고무하고 있다. 「모든 분야의 학문탐구는 그것이 참으로 과학적 방법을 따르고 윤리규범을 따라 이루어진다면 절대로 신앙에 대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속 사물이나 신앙의 내용은 다 함께 하느님 안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사목헌장36항)
신앙은 이성에 근거한 제 학문들의 자율성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 인식론적 가능성, 연구영역 내에서의 책임성을 확실히 인정하고 고무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성에 입각한 제 학문은 제각기 사물(reality)에 관한 학문이므로 절대자를 포함한 모든 사물에 당연히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생명윤리의 본질적 요소인 윤리철학적 고찰은 절대자에 관한 언급을 배제할 수 없으며, 그가 이끌어 내는 윤리가치, 인격의 가치 및 규범의 가치가 절대적 신뢰를 얻으려면 절대자에 관한 언급으로 그 기반을 얻지 않을 수 없다. 생명윤리에 있어 이성적 고찰과 계시에 입각한 고찰의 종합은 다음과 같은 스그레챠의 말을 빌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생명윤리는 이성의 윤리이다. 그것은 과학적, 생물학적, 의학적 자료를 통하여 인간의, 인간에 대한 개입의 합법성을 검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학적 고찰은 인간인격과 그 초월적 가치를 논할 때 그 직접적인 정점을 얻게 될 것이고 그 최종적 언급은 절대적 가치인 신(神)에 대한 언급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생명윤리 철학이 그리스도교 계시를 비교 고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의무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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