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인간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사랑때문에 오셨으며 그리고 사랑으로 죽으심으로써 인류를 미움(저주)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꼭 천당에만 가야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지금 사랑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구원받고 있는것입니다.
세상에는 미운 존재들이 많습니다. 심하게 얘기하면 밥 맛없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이쪽에선 양심과 법에 따라 순리대로 살려고 하지만 저쪽에선 반칙을 범하여 이쪽에게 해코지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안한 줄도 모르고 오히려 잘난척하며 뻔뻔스럽습니다. 이런 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힘든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베드로 보고는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실 수없이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인간이기때문에 잘못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을때까지 용서 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렇게 용서해야 합니다.
성서의 가르침중에서 중요한 사실중의 하나는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절대로 영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용서하지 않으면 이미 용서받은 것까지도 취소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억울해도 용서하며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조건없이 사랑해주셨지만 그러나 모두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일곱번씩 일흔번 용서해도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여전히 저주받은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성서에도 보면 예수님의 원수들이 저주받은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 뱀같은 자들아,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가 지옥의 형벌을 어떻게 피하랴?』(마태23~33). 예수님의 원수들은 지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구제불능입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뉘우쳐서 돌아오면 언제고 용서를 받겠지만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하고 그 크신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납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광주 민주화 항쟁때 수백명이 그야말로 참살을 당했습니다. 수천, 수만의 시민들이 그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살인 명령자가 안 나타납니다. 발포명령자도 없고 참살 명령자도 없습니다. 사람이 무참하게 살육당했는데도 책임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화해가 안되고 용서가 안됩니다.
김정일집단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38선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습니다. 힘이 약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과거였습니다.
그러나 동속을 무참하게 살상한 6.25전쟁은 분명히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용서로서 안아주고 받아줘야 하지만 먼저 선행돼야 할 절차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해자의 사죄입니다.
통일도 좋지만 근본적인 해결없이 무조건적인 남북의 통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난 언젠가 몰지각한 인사들이「김일성 조문」운운하며 추태를 부렸지만, 소위「주사파」라는 운동권의 한 실체도 설득력은 없습니다. 위선자들이 그렇듯이 공산당은 늘 말이 요란합니다. 통일은 말장난이 아닙니다.
요즘 북한 동포에게 사랑의 쌀 보내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굶주리는 우리 동포에게 도울수만 있다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어디 쌀뿐이겠습니까? 그리고 북한의 주민들은 사실 공산당이라는 유령집단의 제일 큰 피해자들입니다. 침묵의 교회 안에서 숨져간 사람들만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떤 형태로도 동족끼리 접근하여 대화를 하고 활로를 튼다는 것은 소망스런 일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공산당이라는 그 우스개 집단도 우리가 껴안게 될 것입니다.
「겁많은 개가 자주 짖는다」고 우리가 그들의 부정이나 반칙을 이해는 하지만 그들에게 끌려다녀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죄악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는 안하셨습니다.
진정한 화해는 기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통일도 오직 기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소련과 서구에서 그 거대한 공산당이 무너진 것도 다 기도의 덕이었습니다.
통일은 옵니다. 분명히 빠른 속도로 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부터 반성하고 기도하면서 통일에 협력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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