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0월 16일 오후 6시 18분 성베드로 대성당 앞의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는 시스틴 성당의 굴뚝위로 솟아오르는 흰색연기를 보고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 흰색연기는 즉위 한달이 채 못돼 서거한 전임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뒤를 이어 새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신호였던것이다.
잠시후 광장에 운집한 10만여의 군중과 함께 전세계는 새 교황으로 선출된 인물에 대해 잠시 당혹감과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제2백64대 교황으로 뽑힌 카톨 보이티야는 이탈리아가 아닌 폴란드출신 추기경이었던것이다.
1423년 네델란드 출신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백55년만에, 그것도 당시 신앙의 자유가 크게 억압받고 있던 공산국가 폴란드에서 교황이 탄생했다는것은 현대 교회사상 매우 큰 「중대사건」이었고 세계사 안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것으로 평가됐다.
공산권국가 출신 교황의 탄생은 당시 냉전체제안에서 교회가 세계에 던지는 화해와 평화의 전조였고 실제로 교회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통해 동서냉전의 빙하가 녹아내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즉위 이듬해인 79년 교황은 사도좌의 으뜸으로서는 사상처음으로 자신의 모국이자 공산국가인 폴란드를 방문했고 83년, 87년에 걸친 추가방문에 이어 90년 4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찾았다. 교황은 나아가 89년 12월에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세기적 만남」을 이룸으로써 냉전시대의 종식을 앞당기는 초석을 놓았다. 이를 두고 당시 전세계 언론은 「논의 내용과 성과를 떠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했다.
동서분열의 십자가를 한몸에 지고 세계 구석구석을 뛰여다니며 세상안에서 세상을 향해 인간 존엄성과 평화, 생명의 가치를 외친 요한 바오로 2세는 올해 재위 17년을 맞아 무려 66번의 해외순방을 기록했다. 그중에는 84년과 89년 두차례의 한국방문도 포함돼있다.
역사 어느 교황보다 많은 시간을 그는 해외순방에 할애했다. 냉전은 끝났지만 아직도 세계는 갈등과 분쟁의 쇼용돌이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르완다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륙과 파괴는 아직도 평화의 사도로서 교황의 발걸음을 분주하게 한다.
「행동하는 교황」으로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처럼 정열적인 해외순방과 함께 회칙, 권고, 교서를 비롯해서한, 메시지 등을 통해 세계 평화와 인류구원을 위한 성직,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구성원과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문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담당해야 할 바람직한 역할과 사명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교황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81년 5월 13일 저격범의 흉탄에 쓰러진 그는 두번에 걸친 대수술과 93일간의 입원, 그리고 47일간의 요양을 필요로 했다. 92년 7월에는 소장에 생긴 종양과 담석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고 지난해 5월에는 숙소에서 넘어져 대퇴부 골절상을 입음으로써 해외순방일정을 연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매번 교황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힘찬 의지로 일어서곤 했다.
냉전의 종식을 앞당긴 「평화의 사도」로서 요한 바오로 2세는 또 「생명의 수호자」이기도 하다.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깨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자는 외침은 「가정」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과 함께 교황이 현대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간절한 호소이다.
교황은 각종 교황문서뿐만 아니라 삼종기도, 알현석상 등 틈날때마다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해야 함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카이로 인구와 개발회의 등을 비롯한 국제회의에도 교황은 특사를 파견,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입장을 분명히 하고 생명의 가치를 거스르는 어떤 일에도 강력한 반대의 뜻을 표시해 오고 있다. 평화의 화해, 생명과 가정, 그리고 일치를 외치는 교황의 목소리는 교황안에 갇쳐있지 않고 세상밖으로 메아리친다. 그는 교회의 수장일뿐만 아니라 현대세계의 영적 지도자로서 엇나가는 세상안으로 직접 찾아가 가르친다. 역대 어느 교황보다도 더 잦은 순방과 문헌방포, 끊임없는 메세지는 세상안에서 「행동하는 교황」임을 분명히 알려준다.
문필가로서도 명성을 얻은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동안 여러권의 저서와 시집,대담집을 발간했다. 그중에서 「사랑과 책임」, 「모순에 찬 징표」, 「사람과 행동」등은 주목할만 하고 84년에는 시집 「부활전날밤」이 국내에서 번역됐다.
전세계 많은 이들은 지난해 10월 전세계에서 동시에 발간한 교황자신의 대담집 제목과도 같이 2천년대를 맞는 인류가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 나아갈수 있도록 교회와 세상을 이끌어 줄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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