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에서 생명윤리학은 자연과학과 윤리학의 대화를 통하여 성립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 생명과학 및 의학의 영역에서 윤리철학적 고찰과 반성이 조직적으로 일어난 것은 그 학문들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인간은 「도대체 어떠한 존재이며 그 본성은 무엇일까」라는 의문 즉 인간학, 인간관에 관한 질문이 자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제기된 때문임도 알았다. 인간을 보는 눈(인간관)은 사람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인간관이 다를때 서로가 생각하는 인간의 도리(윤리), 인간에게 요청하는 행동방식 또한 다르게 된다(『행위는 존재를 따른다』). 예를 들면 인간의 삶은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를바 없으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그의 삶의 모두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순수 현세적 인간관)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쉽게 현세에서의 쾌락주의적 삶을 당연한것으로 요청하게 된다.
오늘의 다원주의(pluralism)사회는 인간학, 인간관의 다원주의 역시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윤리의 다원성을 지적 하지 않을수 없다. 인간관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이론 및 의식이 달라지며 자유스런 행위에 대한 해석 또한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인간관에 따라 그가 설정하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역시 달라진다. 인간관에 따라 생명의 시작이 어떤 시점인지, 임종과 죽음의 의미와 해석이 당연히 엇갈린다. 육체생활의 가치, 부부 사랑과 출산 등의 의미와 가치판단도 인간관에 따라 다양해지고 따라서 그와 관련된 행동이 달리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장하는 인간관 및 그에 따른 윤리관은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 먼저 우리의 생명윤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윤리관을 세가지로 대별해 본다.
첫째, 우리의 생명윤리가 경계하고 있는 것은 극단적인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 윤리관이다. 극단적인 자유주의의 인간학적 표현이 극단적 개인주의(individualism)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가치는 개인의 자유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삶의 기본노선은 개별 실존을 위한 투쟁(struggle for existence)이다. 이들의 기본관심, 선(善)의 기준은 내가 얼마나 내일을 자유로 이행할 수 있었느냐(「freedom let to be let alone to do my own thing」)에 있다. 그러므로 다른 그 무엇보다도 자유가 이들의 절대적 행동기준이요 규범이다. 개별실존의 자유를 구속하는 의무, 덕행, 권위, 전통, 법, 윤리도덕, 규범은 당연히 거부된다. 따라서 어떤 행위가 윤리적이었느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주어진 규범(객관적 윤리규범)에 따라 정해지지 않고 그 행위가 이루어진 개인의 상황에 따라 자유로이 정해져야 한다고 주장(상황윤리)한다. 이들은 이미 있어 온 모든 규범들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할 뿐이므로 거기에 영합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그 모든 규범들에 대하여 일단 의심을 하고 본다.
사람의 자유는 너무 소중한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 자유를 누리시는 하느님의 자유에 동참하는 것이며 하느님이 인간에게 나누어주신 크나큰 선물이다. 자유라는 인격의 특성을 통해서도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제한받는 자유). 인간에게는 하느님과 자신 및 사물의 본성을 거스를 자유는 없는 것이다. 또한 개인주의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하느님은 인간을 개인적으로 삶에 초대하셨다. 따라서 그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개인의 가치들 또한 너무도 소중하다. 오늘의 사회가 과거의 집단주의적 사고(collectivism totalitarianism)에서 벗어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서구를 중심으로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경계되어야 한다.
극단적이고 절대적인 자유주의 및 개인주의적 윤리관에 빠져있는 이들은 자유로운 낙태, 자살의 자유, 자유로운 안락사, 자유로운 성 사용(성해방)을 주장한다. 그러한 행위의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혼인과 가정의 파괴, 생명경시, 인간의 도구화가 그 즉시 뒤따르지 않겠는가. 정치, 경제, 예술 등 모든 인간 사물과 윤리도덕은 분리되어 인간은 자유로워지기는 커녕 죄악과 무질서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충실과 책임을 도와시 하는 절대적 자유는 개인과 공동체를 파괴할 뿐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 우리 한국의 가정 및 개인 역시 이러한 윤리관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