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예술작품의 절대치는 과연 작가가 그 작품에 얼마나 많은 정기(精氣) 또는 생명소(生命素)를 투입하느냐에 따라서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들이 나로서는 한껏 나의 생명소를 연소시켜 얻어낸 것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성찬경(사도요한ㆍ65ㆍ성균관대 영문과교수) 교수가 10년만에 펴낸 6번째 시집 「묵극(默劇)」의 완성에는 무려 30여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표제시라고 할수 있는 묵극은 55년 여름에 시작, 84년 6월에 겨우 탈고 했고 그후로도 10년이 넘어서야 다른 시들과 함께 시집으로 묶여 나왔다.
신앙시집 「황홀한 초록빛」(89)을 제외하고 84년 발표한 「반투명」이후 10년만에 펴낸 묵극은 그 시간의 부피를 닮아 한권의 사전같이 묵직하다.
이번 시집에는 그의 시작(詩作) 방법론, 이른바 「밀핵시(密核詩)」「우주율(宇宙率)」「요소시(要素詩)」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담겨있다.
밀핵시란 「시어에 최대한의 의미(意味)의 밀도(密度)」를 담고 그림으로써 말의 「탄력성(彈力性)」을 한껏 살려보려는 시도를 말하며 우주율이란 「운문과 신문의 중간쯤을 가는 시의 문체」를 의미한다.
이번 시집의 백미(白眉)는 묵극이라 할만 하다. 시인 자신은 「성과에 관계없이 무척 애쓴시」라며 겸손을 보이지만 맑은 시혼(詩魂)으로 30년을 두고 구워낸 이 작품은 「그 구조와 골재 색조가 인간 실존의 전모」를 비추고 있다.
2백자 원고지 50매 분량에 달하는 연작시 「묵극」은 우리시단에서 소홀한 부분, 「철학적 서정시」 또는 「형이상학적 서정시」의 분야를 탐구하고 있는 몇 안되는 시인중 하나인 성시인의 시적 재능과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집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들은 소위 「환경시」들이다.
그물, 미(美)의 나라, 묵극과 함께 네부분으로 나눠진 시집의 한부분을 차지한 제4부 「나의 별아」에 집중적으로 실린 이 환경시들은 아직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전혀 생소했던 60년대말과 70년대초부터 시작된다.
60년대부터 시작이 이루어졌던 환경시는 74년 3월에 「공해시대와 시인」이라는 장시를 발표한 이래 본격적으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환경시가 9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시단에 한 장르로 등장하기 시작한것을 생각해 보면 성시인의 시세계가 가히 예언자적이라고까지 이야기 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공해와 환경에 대한 시인의 눈초리는 자연의 권리, 즉 물권(物棺)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 까지 도달한다. 소유와 점유로서가 아니라 「물질도 스스로의 영묘한 얼개와 내용을 인간처럼 주장할수 있는 권리」, 「더 나아가 사랑을 받을수 있는 권리」로서 물권은 새롭게 파악된 것이다.
오는 8월 20여년 가까이 몸담고 있던 교정을 떠나는 시인에게는 아쉬움이나 서글픔보다는 오히려 아침에 나섰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일상적인 초연함과 여유로움이 엿보인다.
그래서 아직도 책상서랍에 차곡차곡 쌓여 기다리고 있는 시집 두권분의 원고, 「요소시」모음이 될 7번째시집 「눈위로 달리는 그림자 버스」와 8번째 시집 「나사」를 두고서도 시인의 발걸음은 조급하지 않다.
한편 시인은 56년 「문학예술(文學藝術)을 통해 등단, 지금까지 「화형둔주곡」(火刑遁走曲), 「벌레소리송」, 「시간명」 「황홀한 초록빛」, 「반투명」등의 시집과 시선집 「영혼의 눈 육체의 눈」, 「소나무를 기림」을 펴냈고 79년 제11회 한국시인 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가톨릭문우회 대표간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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