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난 30여년동안 실로「경제 기적」으로 일컬어질 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다. 30여년 전만 하더라도 전쟁의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가난한 농업국가로 머물러 있던 한국은 이제 그 모습을 완전히 탈바꿈하여 선진 공업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1960년대 이래 한국경제는 연평균 9퍼센트라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하며 1994년 국내 총생산(GDP)은 3천 7백억달러로 전세계 GDP의 1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은 88백40달러로 1953년의 1백21배나 되는것이다. 이것을 다시 실질 기준으로 보면 1953~94년 동안 GDP는 18배, 1인당 국민소득은 9배로 증가한 것이다.
놀라운 경제성장
이러한 양적 성장은 커다란 구조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고용 구조 면에서 볼때 총 취업자 중에서 농림 어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의 63퍼센트에서 1994년에는 13.6퍼센트로 감소하는 반면 제조업 및 광업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의 8.7퍼센트에서 1994년에는 23.9퍼센트로 증가하였고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부문 종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3년의 28.3퍼센트에서 1994년에는 62.5퍼센트로 증가하였다.
이들 노동자들의 직업 유형별 구성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즉 전문 기술행정 관리, 사무 종사자, 판매종사자, 서비스 종사자 등 서비스형 직업 종사자의 비중은 1963년의 22퍼센트에서 1992년에는 51퍼센트로 증가한 반면 재화 생산형 직업 종사자중 농림어업 종사자의 비중은 1963년의 63퍼센트에서 1992년에는 16퍼센트로 대폭 감소하였고 생산직, 운수장비, 단순 노무자의 비중은 1963년의 15퍼센트에서 1992년에는 33퍼센트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도시화가 급속히 전개되었다.
즉 도시화율이 1960년에는 28퍼센트로 불과하던 것이 1990년에는 74.4퍼센트로 증가하였다. 이제 전 인구의 4분의 3정도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경제 성장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한 인구증가율은 1960년의 3퍼센트에서 1990년에는 0.98퍼센트로 크게 감소하였다.
년7.7% 신자증가
이러한 경제 성장과 경제 사회구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교회도 실로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였다. 우선 신자 수를 볼때 전쟁 직후인 1953년의 16만3천명에서 1960년에는 45만2천명으로 2.7배, 그리고 1993년에는 3백21만명으로 약 20배의 증가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1953년~93년동안 신자수가 연평균 7.7퍼센트라는 놀라운 증가율을 기록한 결과이다. 이 기록은 전세계 신자수의 연평균 증가율이 2퍼센트를 밑도는 것과 비교할 때 실로 경이로운 것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신자증가율의 추이를 볼때 흥미로운 것은 전쟁직후 가난한 농업국가이던 시기인 1953년~60년동안 신자 증가율이 연평균 15.7퍼센트로 가장 높았다는 것과 경제 성장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인 1980년대에 신자 증가율도 가장 높았다는것이다.
물론 이 두 시기는 각각 그 나름대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1953~60년 시기는 경제적 빈곤과 정신적 불안이 팽배해있던 시기로 이때 교회를 통한 해외 구호물자제공은 신자증가의 붐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에는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 행사,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행사(전국 사목회의 103위시성, 정신운동)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개최 및 교황방한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행사가 치러진 시기이다. 이러한 행사들은 한국천주교회가 세상안에서 세상을 위한 존재로서의 자신의 신원에 대해 성찰하고 이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본당 예산의 10퍼센트를 사회복지에 지출하기로 결의하고 한마음 한몸운동을 적극 전개하는 등 이를 구체적으로 증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 그 동안의 사회 사도직에 의해 쌓여왔던 교회에 대한 호감과 상승작용을 하여 신자증가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황방한 등이 큰 효과
아무튼 한국교회의 양적성장은 이렇게 고도의 경제 성장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가 증대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 교회는 물질적 풍요, 편안한 물질 생활이 교회 성장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고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고도성장 속에 지속되어온 신자수의 높은 증가율은 한국교회의 인적ㆍ물적 자원을 크게 증대시켜 주었다. 더욱이 한국교회의 신자들은 대체로 중산층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보면 경제 성장이 한국교회의 인적, 물적자원을 한층 더 확대시켜 주었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인적, 물적 자원을 원동력으로 하여 한국교회는 바로 80년대의 여러 행사들을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었던 것이며 80년대를 전기로 하여 이제까지 선교사, 경제원조 등을 해외로부터 「받는 교회」의 모습을 탈피하여「주는 교회」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90년대에 와서는 매년 예산의 3%를 통일기금으로 축적해 북한선교를 물질적으로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은 교회 건설에 크게 이바지 해온 것이 사실이다. 급격히 진행된 도시화는 도시 본당의 증설을 긴급과제로 제기해왔고 이 과제를 각 본당 신자들이 스스로 해결해 온 사실이 이를 확실하게 증명한다.
도시본당증설 불가피
한편 경제 성장 과정에서 수반된 토지 가격 상승, 건축비 상승 등은 본당 증설을 어렵게 해 본당 비대화를 조장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며, 본당 예산의 상당부분을 토지, 건물 등에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특히 대도시 본당의 경우 본당 지출의 40%가량이 토지, 건물, 시설등에 지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건물로 상징되는 외형적 교회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신자들 마음안의 교회를 건설하기 위한 지출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효율을 중시하며 효율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자본, 즉 물질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원동력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런데 급격한 신자증가는 교회로 하여금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러한 성장 제일주의적,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의 유혹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교회의 외형적 성장의 필요는 교회로 하여금 존재보다는 소유를, 즉 사람의「됨됨이」보다는 「갖고 있는 것」을 중시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는 것 이 다.
지속적인 고도 성장은 어느덧 중산층의 생활스타일을 한국 교회의 생활 스타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중산층이 중심이 되어있는 만큼 중산층 생활스타일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가난한 이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교회안에 자신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느낀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바로 이점이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한국 교회의 중산층화가 직면해 있는 위험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이웃을 생각하는 생활스타일을 증거할 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실천하는 생활스타일 증거할때, 한국교회가 중산층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복음화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것도 사실이다.
냉담ㆍ불명자 증가
한국교회의 놀라운 양적성장의 뒤안길에는 수많은 냉담자와 거주 불명자가 있다. 1993년 현재 전체 신자 중 냉담자와 거주 불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1.6%(37만3천명)와 13.1%(42만명)에 이르고 있다. 한국교회 신자의 24.7%가, 즉 네 사람중 한사람꼴로 냉담자 아니면 거주 불명자인 셈이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웃과 나누는 생활스타일을 통한 성숙된 신앙의 증거를 이들에게 제시하는 한편 본당 비대화를 막고 본당을 친교의 공동체로 건설해야 하며 특히 소공동체들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지역만이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성장의 결과 다양화하고 있는 직종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친교의 공동체의 건설도 모색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 고도성장은 정경 유착에 의한 대기업 특혜를 중심으로 이룩됐고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 농업, 노동자들이 희생을 치렀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런 성장 방식은 한국교회에는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한국 주교단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런 성장 방식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올바른 경제 발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이 정부와 경제계의 책임있는 지위에 종사하는 신자들에 의해 얼마나 실천돼 왔는지 의문이다. 아니 그러한 가르침을 이들은 물론이고 그밖의 다른 모든 신자들이 알고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사회교리교육 절실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은 복음화의 타당한 수단이다』(요한 바오로 2세 회칙「백주년」 54항).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경제성장에 대응해 더욱 효과적인 선교를 펼치기 위해 서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위한 사회교리교육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사회교리교육에는 이론교육만이 아니라 시범교육이 긴요하다. 『교회의 사회적 메시지는 그것의 내적논리와 일관성의 결과로서 보다는 행동의 증거에 의해서 더욱 즉각적인 신뢰를 받게 될 것이다』(「백주년」57항).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웃을 생각하는 생활스타일을 택하는 행동의 증거로써「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더욱 인간답게 되는 것」을 제시할 때 한국교회의 신앙은 더욱 성숙하고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사회도「정신적 가난」을 극복하며 경제성장과 교회의 성장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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