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를 잘 대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힘들고 외로우며 고달플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동행자가 친절하면 그 가는 길이 참으로 따뜻합니다. 우리 민족도 길손들에 대해 상당히 친절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백성 자체가 나그네였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를 잘 보살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오늘 성서에 보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두 가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보면 나그네를 대접한 것이 하느님을 영접한 것이 되어 두 가정에 큰 축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최후심판에 대한 말씀(마태25,31~46)에서 그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우선 1독서(창세기18,1~10)를 보면 아브라함이 더운 대낮에 문득 낯선 사람 셋을 보고는 자기집에 정중히 모시는 내용입니다. 그 나그네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이 자기 집이 아니고는 쉴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모십니다.
아브라함이 낯선 길손들에게 송아지까지 잡아주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막말로 먹다 남은 밥을 줘도 감지덕지 할 판인데 자기들도 쉽게 못 먹는 귀한 음식으로 접대를 합니다. 재산상으로도 손해요 시간상으로도 바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친절 때문에 뜻하지 않은 상을 받게 됩니다.
그때 음식 대접을 받는 분들이 그랬습니다. 내년 봄 싹이 돋을 무렵에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는 집에 아들을 점지해줍니다. 그런데 사라의 나이는 아흔이 다 된 할머니였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망칙해서 사라가 웃었지만 그러나 사라는 정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살때의 일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고 안 얻고가 문제가 아니라 나그네를 따뜻하게 대접하는 그 성의가 아주 감동적입니다. 그는 결코 아들을 얻고 싶어서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피곤한 나그네에 대한 어떤 연민의 정때문에 그랬는데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복받을 사람은 꼭 복받을 일을 합니다.
복음에서는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주 예수님을 영접하는 내용입니다. 그들 자매가 살던 베타니아는 예루살렘 길목에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자주 들리셔서 음식도 드시고 또 쉬셨던 곳입니다. 주님은 그들 자매를 특별하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은 보나 안 보나 굉장히 가난했던 자매였습니다. 라자로가 거지로 비유된 것만봐도 그렇습니다(루가16,19~31참조).
그런데, 오늘 두 자매가 주님을 모시는 태도가 아주 대조적입니다. 마르타는 음식준비에 바빴고 마리아는 주님이 편하게 쉬실수 있는 분위기에 노력했습니다. 에수님은 분명히 피곤하셨지만 그러나 또 시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우선 먹는것보다는 마음의 편안함이었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정신이 복잡하면 밥알이 모래일수 있습니다.
아마 짐작컨대 이랬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떼지어 주님께로 몰려들었고 그둘 중에는 병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전파와 그리고 치유안수에 주님은 지칠대로 지쳤을 것입니다. 아주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이때 그 피곤한 말씀을 옆에서 들어주는 것만 해도 그 피로가 풀리게 됩니다. 우리도 그런 사실을 자주 경험합니다.
여자들이 바가지를 자주 긁으면 남자들이 밖에서 돌게됩니다. 집에 들어가 봤자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말 많은 사람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해도 입이 껄끄럽습니다. 그러나 내 분위기를 잘 이해하고 들어줄줄 아는 사람이 사주면 보리밥이라도 꿀맛이 됩니다. 마음이 편하면 세상이 따뜻하고 음식도 맛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잘 영접하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 집에서 편히 쉬시고 내 가정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실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웃 나그네를 그렇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며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누가 여러분의 나그네 손님입니까? 누가 지금 여러분 곁에서 시중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마음을 다 하고 정성을 다 하여 따뜻하고 편하게 모시도록 합시다. 그것이 복 받는 길이요 또 잘 사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그네가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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