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이 맡았던 하느님의 일을 고스란히 물려주시는데 제자들에게 우선 필요한 일은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같은 뜻으로 받아 들여서 한 목소리로 가르쳐야 하고 세속에 한눈을 팔지 말고 오질 한 길만을 걸어가야 하고 주님의 이름외에는 다른 이름을 빛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일하라고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요한 13, 34)는 새 계명을 주셨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첫째 표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뿐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제자들은 예수와 일치되어 있고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되어 있게 된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할때 예수께서는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뜻이며 서로 사랑함으로써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하느님의 이름은 동의어이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가 하나이심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의 표이다. 성자이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동참하는 영광을 받으며 그 영광은 곧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영광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켰습니다』라고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신 때문이었고 아들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요한3, 16). 구원사업을 마감하는 이때 예수께서 그 일을 완수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맡겨주신 이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잘 보살폈다고 자신있게 말씀하신다(요한 17, 12).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을 잃은 것은 어쩔수 없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는 멸망의 자식이었고 성경말씀이 그렇게 쓰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 독자들에게 의문이 제기된다. 유다스라는 사람은 예수의 배반자로 성경에 점찍어 놓았단 말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자기 죄를 뉘우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은 유다스에게는 해당 되지 않는가? 유다스는 사실 나중에 자기 죄를 뉘우쳤다(마태 27, 4). 예수님도 이 사람만큼은 구할 수가 없었는가?
이많은 의문점에 대한 해답은 이러하다. 첫째 성경말씀은 배반자가 있을 것이고 (시편 41, 9) 나쁜 양치기가 품값으로 30은전을 받아 주님의 분부대로 성전 금궤에 넣었다(즈가 11, 12~13) 라고 되어있다. 이 말씀을 사도 베드로가 유다스의 범행 사실에 응용하여 『유다스에 관하여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빌어 예언하신 말씀이 정녕 이루어 지고 말았습니다』라고 설교하였다(사도1, 16~18). 그러니까 배반자가 있으리라는 예언을 유다스가 스스로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유다스는 나중에 자기 죄를 뉘우치기는 하였지만 절망에 빠져 목 매달아 죽음으로써(마태27, 5) 구제불능의「멸망의 자식」이 되고 말았다. 예수께서 마지막 기도에서 유다스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은 그는 제자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세속의 눈으로 예수를 따랐고(위대한 영웅으로 알고 따르다가 실망하였다), 돈을 밝혔기 때문에 멸망의 길, 즉 악마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충실한 제자들과 대조시키려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금 아버지께 이 사람들을 잘 돌봐 주시도록 간곡히 부탁 드린다. 『지금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이사람들은 나처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을 악마에게서 지켜 주십시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것은 제자들이 세상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예수의 뒤를 따르기 때문에 결국은 기쁨에 넘치게 하려는 것이었다(요한 15, 11:16, 24참조). 이 사람들은 예수한테 전해 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온세계에 전할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인 만큼 진리에 몸바쳐 일하는 것은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 32)고 말씀하신 것은「거룩하게 하리라」는 뜻으로 알아 듣는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귀중하면 예수께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진리에 몸 바치는자는 바로 아버지를 위하여 몸바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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