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르 신부의 참을성 있는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1959년 1월 25일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이 공의회 목적은 가톨릭과 교회의 쇄신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여 현대인에게 진리의 빛을주고, 갈라진 형제들에게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 주어서 함께 일치를 도모하자는것이었다.
근 30년동안 예언자적통찰력으로 교회의 쇄신과 일치운동을 추진하던 콩가르 신부는 전문가로서 공의회의 여러 분야에 직접참여 하도록 요청받았으며, 특히 신학 위원회와 일치문제 위원회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교회헌장과 일치교령의 의안준비와 토의과정에 깊이 참여 하였다.
4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서 1962년 10월에 공의회가 개막되었다. 그후 공의회 회기4년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불어 계통의 주교들에게 공의회 의제들에 관한 강의를 계속하였고, 각회기가 끝날 때마다 회의 진행과 토의과정과 결론을 해설하는 책자를 발간 하였다(1963, 64, 65).
타교파 사람들과의 풍부한 접촉과 교류의 경험에 의하여 그는 각 교파들사이의 갈등이 단순히 교리상의 문제만이 아니고 상호불신과 단절의 역사에서 온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1960년에「성전과 전통, 역사의 고찰」을 발간하여 각 교파의 전통의 재발견을 강조하였고, 63년에는「성전과 전통, 신학적 고찰」을 발간하여 전통들의 신학적 가치를 논증하였다.
전문위원으로서의 분주한 활동중에서도「일치운동의 양상」(1962), 「거룩한 교회」(1963) 등 저서를 통하여 교회는 가시적 제도이기 전에 하느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임을 강조 하였다. 그리고 교회헌장을 토의 하면서 일치운동의 전망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던 64년에 「대화하는그리스도교도」를 발간 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친구들의 강요에 못이겨서 그 자신의 고난에 찬 일치운동의 체험을 소개하고, 운동의 기본방법으로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진정한 대화를 주장 하였다.
1965년에 공의회가 페막 되면서 그는 전문위원으로 협력하던 학자들과 함께 신학잡지「콘칠리움」을 발족 시켰다.
이 잡지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신속히 전달하고 신학자들의 연구를 자극함으로서 비교할 기회를 주며, 비가톨릭학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일치운동을 신학적으로 지원하는데 목적이 있다.
또 공의회가 반포한 문헌들을 전문적으로 해설하는 방대한 주석서들을「우남 쌍땀」문고를 통하여 발간하는 작업을 주도하면서 자신도 이 전집의 여러분야들 집필 하였다.
교부시대의 교회론은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그 이후의 교회론의 역사를 정리하여 1968년에는 「중세초기의 교회론」을 발표하고, 1970년에는「성아우구스띠노에서 근세까지의 교회」를 발간하여 교회론의 흐름을 소개 하였다.
1970년에는 병고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던 종합적 교회론「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번되며 사도적인 교회」를 출판 하였다.
이 책은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을 기저로 하여 교회를 그 본질과 기능면에서 고찰하여 교회의 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1971년에는「교회직무와 교회참여」를 발간하여 각 교파의 직무를 비교 논술 하였다.
해방신학이 한창 기승을 부릴때에 그는구원과 해방에 관한「예언자적 백성」(1975)을 발간하여 구원의 지표와 도구인 하느님의 백성을 논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은 보수주의자는 아니지만 성전(거룩한 전통)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천명 하면서 해방신학의 구원관을 비판 하였다.
70년대에는 신경계통의 병마와 싸우면서 외향적 활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그가 평생토록 서방신학의 중대한 약점이라고 수시로 지적하던 「성령론」에 대하여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 갔다. 그 결과로「나는 성령을 믿는다」라는 제호로 성령론 3권을 펴냈다.
제1권(1979)에서는 신구약성서와 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성령체험을 기술하고, 제2권(1980)에서는 교회와 개인생활에서의 성령의 역사하심을 교의 신학적으로 탐구하고, 제3권(1980)에서는 동방신학과 서방신학의 성령론의 역사를 개관하고 성령과 성사들의 관련을 논 하였다. 아마 이 책이 그의 최후의 대작이 될 것이다.
콩가르 신부는 80년대에 투병과 희생의 생활중에서도 집필을 계속 하였다.
「다양성과 일치」(82), 「마르틴 루터의 신앙과 개혁」(83), 「전통과 교회생활」(84), 「생명에의 초대」(85), 「가을의 정담」(87) 등을 발간하여 일치운동을 뒷받침 하였다.
한편 그의 제자들은 53년에서 87년까지 여러 간행물에 흩어져 있던 스승의 글들을 수집, 편판하여「교회와 교황직」을 1994년에 발간하였다.
1994년 11월 26일부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학의 발전과 일치운동에 기여한 공로를 치하하여 콩가르 신부를 추기경으로 서임 하였다.
1995년 6월 22일 콩가르 추기경은 빠리에서 서거 하였다. 만91세의 고령을 생각하면 예견된 바이지만 우리는 금세기 최대의 신학자 한분을 잃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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