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국 위안부 피해자 이영숙 할머니
배상시위 더이상 없었으면…
2년째 수요시위 전개 불구
사회 무관심으로 더욱 소외
『부끄러움을 알아야지…』지난 7월 26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있은 정신대 만행규탄 시위를 바라보던 한 시민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는 시위에 참가한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순결한 가슴에 못을 박았다.
『더이상 이런 시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수모를 받으면서 까지 우리가 직접 나서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바로 당사자인 우리가 아니면 정신대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 몸과 마음의 아픈 상처를 받고 오늘날까지 살아온 이영숙(마리아ㆍ72) 할머니는 벌써 2년째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 시위를 해오고 있다.
이영숙 할머니의 눈가에는 5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이영숙 할머니가 시골에서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만 믿고 종군 위안부로 일본군을 따라나선 것은 데이트가 뭔지도 모르는 순진한 17살 때였다. 한달동안의 긴 여행을 거쳐 도착한 중국 관동지방. 그곳에서의 생활은 할머니 표현대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죽지 못해 사는 생활 그자체였다. 하루 20~30명의 일본군인을 상대하면서 할머니는 오직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갔다.
5년이 지난 1945년. 어느덧 22살이 된 할머니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해방의 벅찬 가슴을 안고 귀국 배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던 고국땅에 대한 기대가 채 부풀기도 전에 배안에서의 전염병에 시달려야만 했다.
『풍덩 풍덩, 아침이면 시체를 수장하는 소리가 수없이 들렸어요. 그 가운데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노력했지요. 그땐 정말 지옥이었어요』
간신히 살아서 고국 땅을 밟은 사람들은 그때부터 연락이 끊긴 가족과 이리저리 헤어져 홀러서기를 해야만 했다.
23살부터 이영숙 할머니는 안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국가에서 준 1백원(당시 한달 하숙비가 30원)을 들고 자립을 시작한 이영숙 할머니는 식당일 부터 미군부대 잡일까지 소득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젊은날의 고통을 뒤로 한채 돈을 벌던 할머니가 인천에 정착한 것은 30세가 되던 해였다. 27살때 만난 남편과 함께 올라온 인천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중국 관동생활의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지지 못한 이영숙 할머니는 인천에서 남편과의 이혼이라는 아픈 체험을 해야 했고 결국 신앙에 의지하는 삶을 시작했다. 철저하게 혼자만의 인생에 익숙해진 할머니에게 신앙은 큰 위안이 됐다.
『37살때부터 성당에 줄곧 다니다가 61살때인 1983년에 세례를 받았어요. 그땐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많아서인지 지금은 성당에 다닐 기력조차 없어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영숙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몇년째 성당에 다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회가 닿으면 1시간 이상의 긴 고해성사를 받고 싶다며 신부님을 주선해 달라는 이영숙 할머니. 보통의 할머니에게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그 어떤 외로움이 할머니의 말에서 짙게 배어나고 있었다.
『힘없는 할머니들이 나서서 국가의 권리와 자존심을 보상받기 위해 노력하는데 나라의 내로라하는 많은 젊은 사람들은 무엇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외롭고 힘들어요.』
사람 나이로 보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50년. 해방후 할머니는 아직도 일제치하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사회의 무관심속에 소외된 그늘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일본 정평협회장 오까다 주교
한일간 역사적현실 피부로 절감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문 인상적
위안부할머니들과 일본대사관 데모 참가
“양국교회 주관 역사교과서 편찬도 필요”
지난 7월 26일 정오 일본 대사관앞에서 열린 수요 정신대시위에는 일본 천주교 우라와교구장 오까다 다께오 주교를 비롯 10여명의 일본 가톨릭신자들이 참석, 이채를 띠었다.
당일 시위를 주관한 새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회장=윤순녀)와 함께 정신대 문제와 관련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소리높여 요구한 이들은 우라와교구에서 한국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회원들이었다.
직접 그 모임을 지도하면서 한국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오까다 주교는 다름아닌 일본 천주교회 정의평화협의회장.
89년 서울 세계 성체대회 참가등에 이어 세번째 한국 방문인 오까다 주교는 동행한 신자들과 안중근 기념관 독립기념관 및 한일간 과거가 얽혀있는 장소들을 순례, 광복 50주년과 원폭투하 50주년을 맞고 있는 양국 역사에 대해 이해를 새롭게 했다.
또한 수요시위 참가 이외에도 천주교 인권위원회를 방문, 상호협력 방안들을 논의했다.
한국의 역사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와의 만남을 갖기위해 방한했다는 오까다 주교를 만나 일본 정의평화협의회 활동, 정신대 문제에 관한 일본 교회의 입장등을 들어보았다.
『수요 정신대 시위참가 후 과거 군위안부였던 할머니들과 식사를 하면서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대문제는 단순히 과거역사의 문제가 아니고 어찌보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까다 주교는 정신대할머니들과 만나면서「빨리 빨리」라는 한국말을 배울수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죽기전에 빨리 정신대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이구동성의 호소때문이었다.
『일본의 기업들이 아시아 각국에 많이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그 기업에 고용된 여성들이 피해를 볼수도 있다고 볼때 정신대 문제는 아직도 계속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군위안부 출신 여성들에 대한 민간기구의 배상과 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표명한 오까다 주교는 정신대문제에대한 일본인들의 낮은 인식과 저조한 관심을 안타까워했다.
오까다 주교는 『정신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본 교회가 예언자적 소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언급하고 귀국후 정신대문제를 비롯 과거 일본의 역사를 비롯 과거 일본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도록 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올 12월 열리는 주교회의에도 이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할 예정이라는 오까다 주교는 이번 한국 방문이 한일간 역사 현실을 피부로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과 가장 인접해 있는 나라로서 또한 선교열이 대단한 한국교회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래서 한국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는 오까다 주교.
올해로 설립 25주년을 맞는 일본 정의평화협의회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문제에 나서는 한편 핵사용 반대 운동 등도 펼치고 있다고 들려줬다. 한국 필리핀 등 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활동, 외국인 등록법 폐지운동 등도 그중 일부라고 오까다주교는 소개했다.
『앞으로 평화와 관련된 교육 활동등을 전개하는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이번 한국 방문과 같은 역사기행을 마련, 특히 젊은 사람들이 과거 일본의 모습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오까다주교가 계획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역사기행은 정의평화협의회 차원에서 우라와교구 차원에서도 적극 추진될 전망이다.
이미 교구 청년단체 회원 50여명이 한국을 방문, 서울ㆍ대구대교구를 비롯 역사의 현장들을 돌아보았다.
한일간 상호이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특히 양국 교회의 교류 만남이 활발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오까다 주교는 두 교회가 공동 주관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작업도 좋은 방안이라고 피력했다.
일본교회는 올해 피폭50주년과 관련 주교회의가 관련 메시지를 발표하는 한편 교구별 각종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우라와교구도 11월 23일「평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것인가」를 주제로 교구 행사를 갖는다. 더불어 평화를 주제로한 비디오도 제작중이라고. 청년단체들의 역사기행도 이 행사의 일환으로 준비된 것이다.
안중근 기념관을 방문, 안의사의 행적에 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세번째 한국 방문의 인상을 밝힌 오까다 주교는 『한국 일본사이의 평화를 위해 복음선포를 위해 양국교회가 더욱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재삼 강조했다.
올해 53세인 오까다 주교는 73년 사제로 서품됐고 91년 주교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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