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광복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어김없이 맞이하는 광복절이지만 해방 50년 분단 50년 되는 해인 올해 8ㆍ15는 통일에 대한 분위기와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민족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일제식민지하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 주었던 광복은 또한 한국 천주교회에도 국내외적인 커다란 발전상을 가져다 주었다.
본지는 광복50주년 8ㆍ15 특집으로 해방이후 가톨릭교회사 속에서 드러나는 한국역사 50개 성사를 살펴본다. 해방 50주년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교회내 각계 인사 50명을 무작위로 선정한후 1945년부터 현재까지 교회내에서 발생한 1백개 사건을 제시하고 순위별로 50개를 고르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제시된 1백개 사건중 77년 오원춘사건 87년 명동 민주화항쟁 등 몇건의 중요 뉴스가 누락된 것이 발견됐고 그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사를 시행했다. 기사에 앞서 본지가 조사한 50대뉴스는 신문이나 각종 자료를 토대로 기초조사에 임했기에 누락된 부분도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이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청한다.
■ 40년대
▲연길에 진주한 소련군, 교회 탄압 시작-원산대목구에 속한 연길교구가 45년 소련군의 진주로 교회와 수도원이 폐쇄되고 성직자 수도자는 투옥되거나 추방당함
▲경향신문 창간-1906년 한국천주교회가 창간했던 순수 한글 주간신문인 경향신문이 46년 10월 6일 일간지로 새롭게 창간.
■ 50년대
▲교황 요한 23세 즉위-비오 12세 교황의 서거로 1958년 10월 28일 제2백61대 교황으로 베니스의 총대주교인 안젤로 쥬세뻬 론칼리 추기경을 선출
■ 60년대
▲한국교회 교계제도 설정-교황 요한 23세는 62년 3월 10일자로 한국교회에 완전한 자치교계제를 설정하고 서울 대구 광주대목구를 대교구(관구)로 승격시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세상에 대해 교회를 개방하는 자세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62년 10월 11일 로마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개막됐다.
▲우리말 경문 사용-교황청은 한국주교회의가 61년 4월 21일 제정한 새로운 전례개혁율령을 동년 7월 11일자로 인준, 미사봉헌 성사진행에 우리말 경문 사용을 허용
▲전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창립-전국평협이 68년 7월 23일 대전에서 역사적인 창립 총회를 개최함
▲병인순교자 24위 시복-우리나라 순교자 24위 68년 10월 6일 오전 10시 로마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복자위에 올랐다.
▲한국 최초로 추기경 탄생-교황 바오로 6세는 69년 3월 28일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
■ 70년대
▲평신도 성체분배권-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는 70년 8월 4일자 인류복음화성성 교서 제4504~70호에 의거, 평신도를 포함한 사제 아닌 다른 사람에게 미사중 성체 분배를 돕도록 평신도에게 권한 부여
▲가톨릭 개신교 공동번역 신약성서 출간-한국 그리스도교 2백년 사상 가톨릭과 개신교 양교회가 이룬 가장 큰 사업으로 추진돼온 공동번역작업이 71년 4월3일 완료.
▲한국 주교단 공동교서-한국 천주교주교단은 71년 11월 14일 제4회 평신도의 날을 맞아 전국 신자들과 선의의 형제들을 향해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고 호소하는 공동교서를 발표했다.
▲김수환추기경 시국성명-한국 주교회의의장 김추기경은 72년 8월 9일 7ㆍ4 남북 공동성명과 8ㆍ3 긴급재정명령에 관한 교회의입장을 밝히는 메시지 발표
▲지학순 주교 징역 15년 선고-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74년 8월 12일 내란선동 및 대통령 긴급초조치 위반 피의사건 선고공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음
▲3ㆍ1절 민주구국 명동사건-76년 3월 1일 민주구국선언 낭독 사건으로 항세웅 신부 등 다수의 사제가 구속
▲주교단 인공임신중절 관련 입장 발표-76년 6월 14일 한국천주교주교단이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우리의 태도라는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인공임신중절의 근절을 촉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즉위-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서거로 78년 10월 16일 폴란드 출신 카톨 보이티야가 제2백64대 교황으로 선출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 연구결과 발표-79년 5월 19일 최석우 신부는 포교를 위해 제작된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가 문화사적 교회사적 지리학적 면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고 그 연구 결과를 발표
▲오원춘사건-가농 안동교구연합회 이사인 오원춘씨와 정호경 신부 등이 79년 8월 10일 이사건과 관련 긴급조치9호 위반협의로 구속
■ 80년대
▲서울소신학교 폐쇄-서울 대교구는 80년 8월 19일자 공문을 통해 지원자의 감소화 경제적 부담 등을 이유로 81년부터 소신학교 폐쇄를 결정
▲조선교구 설정1백50주년 행사-81년 10월 18일 여의도광장에서 조선교구 설정1백5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80만 신자가 참가한 가운데 개최
▲한국 외방선교회 사제 첫 파견-한국외방선교회 선교사제 첫 해외 파견미사가 81년 11월 8일 명동성당에서 봉헌
▲부산 미 문화원사건-82년 3월 8일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과 관련, 수배중인 주교회의 추계 총회에서 매년대림 제2주일을 인권주일로 제정
▲북한선교부 출범-2백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82년 12월 1일 북한선교부가 출범
▲새교회법 발효-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3년 1월 25일 새교회법을 공포하는 교황령에 서명함으로써 83년 11월27일 대림첫주부터 효력이 발생
▲맹인무료 개안수술-2백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영세민 실명자에게 무료 개안수술
▲1811년 교황성하께 올린 서한원본 발견-유실된 것으로 알려진 한문원본이 84년 2월 9일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고문서고에서 윤민구 신부에 의해 발견
▲대건로 탄생-서울시가 84년 3월 20일 새남터에서 절두 산성지까지의 거리를 대건로로 명명
▲교황방한-84년 5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
▲1백3위 성인탄생-84년 5월6일 여의도 광장에서 1백만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2백주년 사목회의-84년 11월 30일부터 양일간 4년여동안 추진돼 오던 12개의 사목회의 의안을 확정
▲가톨릭대사전 간행-한국교회사연구소가 85년 2월 20일 만5년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끝에 대사전을 펴냄
▲한국 성인축일 의무축일로-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5년 3월 12일 한국 1백3위 순교성인들이 축일을 세계 공용 의무축일로 선포
▲40년만에 북한에서 미사 남북한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한 지학순 주교가 85년 9월 22일 북한땅에서 첫 미사봉헌
▲KBS시청료 거부운동-정평위와 한국평협이 86년 4월 9일과 10일 시청료 거부운동에 동참한다고 발표
▲가톨릭신문창간 60돌-1927년 창간된 가톨릭신문이 87년 4월 1일자로 창간60돌을 맞아 가톨릭신문사사를 펴내고 매주 12면으로 증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범인조작 성명발표-정의구현 사제단은 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광주사태 7주기 추모미사후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 조작됐다는 성명서를 발표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89년 10월 4일부터 8일까지 서울에서「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개최
■ 90년대
평화방송 개국-가톨릭 평화방송이 한국교회사상 처음으로 부활절인 90년 4월 15일 오전 11시 첫 정규방송 전파를 발사하며 개국
▲낙태허용 형법개정안 폐지 청원서 제출-한국 천주교 주교단이 92년 태아생명수호를 위한 형법개정안 제135조 폐지 낙태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
▲가톨릭교회 교리서 공표-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입각해 만든 가톨릭교회 새교리서가 92년 11월 16일 공표됐다.
▲신자3백만돌파-92년말 현재 3백6만6천명으로 85년 2백만을 돌파한 이래 7년만에 3백만을 돌파
▲가톨릭종교교과서 사상 최초발행-가톨릭교육재단 협의회에 의해 발간돼 교육부검인정교과서로 등록, 93년 3월부터 교과서로 사용
▲교회 안중근 의사 의거 정당성 인정-93년 9월 21일 한국 가톨릭문화사연구회 주최 안중근심포지엄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민족의 존엄과 국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인정
▲성직자 갑근세 납부 전국 확대-94년 6월 10일 수원교구를 시작으로 성직자 납세 전국적으로 확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발족-94년 6월 29일 서울 가톨릭회관에서 우리농전국본부가 발족
▲아시아 평신도회의 개최-94년 9월 4일부터 9일까지 아론의 집에서 아시아 15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평신도의 사회교리 실천을 주제로 개최
▲민족화해위위원회 발족-95년 3월 1일 서울대교구가 광복50주년을 맞아 최창무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하고 갈라진 민족의 연대 및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활동에 돌입
▲명동성당 공권력투입-95년 6월 6일 이땅의 도덕성과 민주화의 최후 보루로 신성시돼온 명동성당이 97년 역사상 처음으로 문민정부의 공권력에 의해 찬탈당함
◆50대 뉴스 설문 해설
2차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 등 대쇄신
교황 두차례 방한 통해 교회 위상 높여
8ㆍ15해방 6ㆍ25 4ㆍ19 5ㆍ16 87년 민주화항쟁 등 광복후 격동의 50개 성상속에 교회안에 발생했던 각종 사건들은 시대상황과 맞물린 교회모습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36년간의 일제 식민지시대를 종식시킨 45년 8월 15일은 교회에도 더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해방 이를 한 유일의 한국인가톨릭 주교였던 노기남 주교는 모든 성직자및 신자들에게 축복을 내림과 동시에 고유(告諛)를 발표한다.
미군과 소련군이 38선을 경계로 남북에 주문하면서 남한에서는 6ㆍ25동란전까지 교세가 매년 1만여명씩 느는 등 신앙의 자유에 힘입어 괄목할만한 교회 성장이 두드러진다. 한편 북한에서는 46년부터 연길에 진주한 소련군이 본격적 교회탄압을 시작, 분단의 아픔이 가시화됐다.
그 골은 6ㆍ25동란으로 인해 한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이어졌고 교회 역시 예외없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수많은 성당이 파괴됐거나 약탈당했고 성직 수도자들의 피납 혹은 피살도 속출했다.
휴전과 함께 전후 복구시대를 거치면서 교회는 외형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보인다. 전국 각 교구에 많은 고아원 학교 병원이 설립되고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가 구성되는 한편 9개 교구장이 공동 사목 교서를 발표하는 등 안으로는 체계를 정비하면서 재건의 목소리가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가운데 밖으로는 나눔차원의 교육복지 활동을 활발히 펼쳐나갔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로부터 온전한 홀로서기를 공인받는것과 아울러 역사적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쇄신의 시기를 맞는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2년 3월 25일「한국교회를 완전히 독립된 교계제도를 설정한다」는 교서를 발표한다. 서울 대구 광주가 대교구(관구)로 승격했고 3개교구에 소속 교구가 설정되는 등 전교 지구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62년 10월 11일 개막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한국교회에도 대변혁의 시대를 가져다 주었다.
65년 1월 1일부터 포함 전례개혁이 단행됐고 교회 전반에 걸친 쇄신작업이 추진됐으며 68년에는 한국 평신도 사도직협의회가 창립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하느님 백성의 교의를 실천에 옮겼다.
같은해 10월 병인순교자 24위가 시복됐고 69년에는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탄생, 쇄신과 도약을 다짐하고 그 역량을 결집시킨 6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책임있는 교회로의 출사표를 던지며 70년대를 맞았던 한국교회 김수환 추기경은 72년 8월 9일 7ㆍ4남북공동성명 8ㆍ3 긴급재정 명령 등에 관한 시국성명 발표로 국가를 향한 교회 목소리를 드러낸다. 이어 74년에는 지학순 주교가 교회 고위 성직자신분으로 실정법에 의해 처음으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유신정권하 정치적 혼란이 끊이지 않았던 당시 교회는 사회를 향한 정의구현의 몸부림을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표출시켰다.
80만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기념행사(81년)는 가톨릭의 일사분란함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계기였다. 84년 교황 첫 방한 1백3위 성인 탄생 89년 세계성체대회개최 등 굵직한 행사들을 치르면서 가톨릭의 위상을드러내고 확인했던 교회는 87년 박종철군 고문사건 진상발표를 기폭제로 민주화항쟁의 불을 당기게 된다. 옳은 것을 밝히기 위한 교회모습을 뜨겁게 분출시켰던 한국 가톨릭은 민주화의 성지 온상으로 자리잡게 되고 소외받고 누구도 돌보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모아지는 곳으로 그 위치를 굳히게 된다. 내적으로도 교황반한, 활발한 선교노력등에 힘입어 예비자들이 줄을 잇는 등 교세성장의 황금기를 맞았다. 이로써 74년 이 후 11년만에 1백만신자가 불어나는 기록이 세워지기도 했다.
2천년대를 불과 5년여 앞두고 있는 한국교회는 90년대 들어 내적으로는 소공동체운동 등을 펼치면서 미래교회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80년대 급격한 외형성장이 사회에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로 성숙되지 못했고 이로써 신자내실화만이 앞으로의 교회 향방을 가늠짓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인식에서 준비된 것이다.
더불어 환경 생명 농촌운동등을 의욕적으로 펼치면서 생명경시 물질 만능풍조에 맞서는 모습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최근의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사건으로 가난한이와 함께 한다는 교회 소명을 다시 한번 확인한 바 있는 교회는 광복50주년을 기폭제로 이제 통일 논의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광복 50주년을 지내면서 격동의 역사현장을 함께 살아온 한국교회, 앞으로도 역사의 궤를 같아하면서 진리의 목소리로 그 소명과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뜨거운 몸짓과 땀 흘림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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