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가톨릭 신학은 신앙만(sola fide) 강조해온 개신교 신학의 전통과는 달리 인간 행위와 노동을 중시해온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톨릭 윤리신학도 인간 행위의 윤리성 판별에 큰 비중을 두고 발전해 왔고 따라서 의료행위와 연관된 행위들의 윤리성 판단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것이다. 또한 16세기 후반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의 가톨릭 윤리신학은 고해성사의(따라서 행위의 죄성 판별의) 시녀로서 죄의 정도와 질을 판단하는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그 주요 사명이었다. 따라서 윤리신학이 완전한 크리스챤 생활의 안내자로서의 학문적 발전을 이룰 수는 없었으나 개인적 행위의 윤리성과 비윤리성을 고해소에서 판단할 자료를 제공함에 따라, 의료윤리의 발전은 가져오는 한 원인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논(T.A.Schannon) 같은 이는 오늘의 가톨릭 교회와 윤리신학이 생명윤리에서는 유효적절한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우리의 동의를 받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생명과학, 의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비교되는 가톨릭 교회의 완만성(slowness)과 조심성(cautiouness)이다. 물론 윤리적 반성과 비판은 과학기술의 시도에 뒤이어 일어나는 법이므로 윤리적 대응의 후속성은 가톨릭 교회만의 특징은 아니다. 과학기술은 윤리적 판단 이전에 이미 실험을 통하여 현실화되고 말 뿐아니라 그 특성상 급속도로 확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리적 평가의 조심성은 필요하지만 과학주의, 실용주의, 경제적 가치관에 젖은 현대인에게 그 양심을 일깨워 주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생명윤리와 관련되는 주요 신학적 토의 대상은 정황(circumstance)의 평가에 관한 문제이다. 즉 생명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났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는 구체적 상황보다도 언제 어디서나 적용되는 보편적 윤리규범과 원칙을 절대화시키고 그것을 추상적으로 적용하며 상황을 무시한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황은 원래 가톨릭 윤리 안에서도 행위자체의 윤리성, 행위의 지향과 함께 행위의 윤리성 판단의 세 기준 중 하나이다. 즉 어떤 인간행위가 윤리적인지 비윤리적인지를 판단하려면 첫째 그 행위자체가 어떤 행위인지 (예: 훔치는 행위는 일단 비윤리적이다), 둘째 그행위가 어떤상황에서 일어났는지(그 훔치는 행위가 굶어죽을 상황에 있는 사람의 경우라면?), 셋째 그 행위자가 어떤 의도(지향)로 그 행위를 했는지 (재산 축적을 위한 도둑질과 아사를 면하기 위한 도둑질은 다르다)를 종합적으로 알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와 그 윤리신학자들은 윤리신학의 이론적 발전에 있어 상황의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상황에서 명백히 천명된 이론과 다른 어떤 결론을 내릴때 가톨릭 교회가 흔히 하는 말은 겨우「사목상 이유」이지 학문적인 논리에 의한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생명 및 의료윤리에 있어 정황은 매우 중요하다. :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곳은 각 구체적 경우라는 사실은 생명 및 의료윤리에서 더욱 그러하며(생명과 관련된 가정적, 정치사회적, 경제적, 의학적 상황은 참으로 다양하다!) 상황자체가 행위의 윤리적 본질을 완전히 전도시킬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위자체만 보면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그 상황때문에 윤리적일 수가 많다).
과학의 발전, 정황의 복합성 다음으로 그가 지적하는 세번째 문제는 가톨릭 교회가 캐캐 묵은 윤리적 전통을 현상황에 적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 의학 윤리가 중요하게 받아 들이는 것 중 하나는 이중결과의 원칙(principle of double effect), 통상 및 특수수단(ordinary and extraordinary means)같은 윤리적 원칙들을 발전, 정제시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중요한 윤리학적 의미를 가진 이 윤리원칙들은 현대의 우리와는 다른 시대와 다른 정황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윤리원칙들이 엄청나 과학기술의 발전과 의료의 세분화를 이룬 오늘날 어떻게 받아 들여져야 하느냐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실질적이고도 비판적인 재고가 요청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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