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의 음악 분야는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색깔을 갖고 태동했다. 교회 초창기서부터 박해를 받아온 근 1백여년 동안 외국의 성가보다는 우리 조상들이 손수 자작한 수많은 천주가사(天主歌辭)들을 갖고 대중이 잘 알고 있던 민요나 노래가락에 간단한 곡조를 붙여서 불렀다.
결국 가톨릭 전통 성가가 들어오게 된 것은 박해가 끝나고 많은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사목을 담당하게 되면서 부터 서구의 성가곡(그레고리안 성가 포함)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불리기 시작됐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인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먼저 프랑스의 전례성가들이 소개되었고, 1910년경부터는 베네딕도수도회 신부들에 의해 독일의 성가가, 그리고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미국 신부들에 의해 미국성가도 국내에 소개돼 성가의 국제화 시대를 맞게 됐다.
이에따라 한국교회 성가집의 역사도 다양하게 발전됐다. 초기에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성가곡들과 최양업(도마) 신부의 자작「천주가사」를 포함해서 1924년 서울에서「죠션어 성가집」이 최초로 출판된 이래 1936년 대구대교구, 1938년 독일인 진도광 신부에 의해「가톨릭 성가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해방이후에는 1948년 서울대교구 고 이문근 신부가「가톨릭 성가집」을 발간, 한국교회의 성가집 출판의 새국면을 맞게 된다. 이 성가집에는 이신부가 만든 다섯곡의 성가와「죠선어성가집」에서 24곡, 덕원「가톨릭 성가집」에서 28곡 등 이때까지 발간된 성가집이 총정리되어 있다.
이후 1957년「가톨릭 성가집」을 수정 보완, 「정선 가톨릭 성가집」이 출판되었으며 1973년에「공동체 성가집」과「새 전례 가톨릭 성가」가 연달아 발간되기에 이른다. 또 가톨릭교회는 1984년 2백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통일 성가집 편찬을 결의하고 기존성가집과 신곡들을 포함 3백98곡의 통일 성가집을 1985년에 발행, 현재까지 전례용으로 쓰고 있다.
이처럼 한국가톨릭 성음악의 발전은 성가집의 변천과정을 통해서도 알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 수준이 높지 못한 성가집의 기원과 변천과정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교회성음악의 발전사를 가늠하기란 무리다.
초기 신자들이 한국적 가락에 맞추어 기도문 등을 노래로 불렀고 1930년경 덕원과 서울에서 성가집이 발견되기는 했어도 이것이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이에대해 가톨릭 성음악 관계자들은『성가대라는 형태가 갖추어져서 혼성합창이 시작된 1939년 명동성당에서 장발, 한창우씨 등에 의해 단성(單聲)노래를 지양하고 이른바 합창으로써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것이 성음악의 시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시 명동에서는 동성상업학교의 보댕 신부의 지도로 아르카텔트의「아베 마리아」와 헨델의 오라토리오에서 멜로디를 얻은「라우다 떼도미눔」이 남성합창으로 연주되는 등 성음악 분야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당시 동성상업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한 젊은 성악가 하대응씨가 명동성당의 합창지도를 맡게 되고, 점차적으로 주일미사 때 남성합창곡이 불리어지게 됐다.
이러한 수준의 한국교회 성음악은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발전을 거듭한다. 45년 해방이 되어 주한미군의 환영미사가 명동에서 거행될 때 혼성합창이 시작되었으며 이때부터「서울가톨릭합창단」이 태동하게 된다. 서울가톨릭합창단은 한국에서 현존하는 합창단 중 가장 역사가 깊은 합창단이기도 하다.
또한 대구대교구의 경우 해방이후 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성가운동을 시작, 처음에는 남자들은 오르간이 놓여있는 2층 성가대석에서 여자들은 아래층의 신자석에서 혼성합창을 시도한 진풍경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가톨릭합창단이 대구로 내려오면서 대구교구 측에서도 이에 자극을 받아 교회 안팎으로 활발한 활동이 시작되기에 이른다.
해방이후 특히 1960년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전후해서 한국교회 성음악계는 또한번의 큰 변혁을 겪게 된다. 이른바 성가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게 된것이 바로 그것이다.
성가대만이 노래를 불렀던 이전의 전례분위기에서 전신자가 함께 성가를 부르게 된 획기적인 변화속에서 성음악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이렇게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전국적으로 번져갔던 개창성가운동은 80년대에 들어와 생활을 바탕으로하는 생활성가, 복음성가의 출현을 낳는다. 이 복음성가는 8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청소년들 사이에서 즐겨불려지는등 그들의 삶속에 깊숙히 스며들어 있다.
아무튼 1995년 8월 현재 한국 교회음악은 정악보다는 개창성가, 복음성가가 활발히 불려지고 연주되는듯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러한 면에서 오늘날 교회음악의 침체를 극복하고 부흥시키기 위해 어떠한 시도와 노력이 필요함은 당연한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전통적인 전례음악과 개창성가, 복음성가 등이 함께 발전할 수 있고, 또 이것들이 각전례 상황상황마다 적절하게 불려질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얘기다.
교회 음악 관계자들은『함께 미사한다는 뜻에서 이른바 개창을 하고 또한 아울러 음악적으로 아름답고 깊은 감동을 주는 성가합창을 들음으로써 그 미사 참례는 더욱 완벽을 기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장엄미사곡과 더불어 개창성가가 때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불리워 질 수 있도록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분위기가 마련돼야된다』고 강조했다.
광복 50년을 맞이한 한국교회는 2천년대 민족복음화를 위해 성음악분야에서 많은 변화와 관심을 가져야된다는 역사적 요청을 받고있다.
교회의 전체적인 성음악 발전을 위해서는 유능한 지도자의 발굴과 인재양성에 주력해야한다. 이러한 면에서 지휘자와 반주자, 성가대를 전문적으로 육성하고 양성화시키기위해 총력을 쏟기 위해 지난 5월 19일 출범한「가톨릭음악인장학회」는 매우 고무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지원할 수 있는 일정한 예산의 뒷받침이 있어야 된다.
2천년대 한국 가톨릭 성음악은 현재 이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유기적인 협력이 바탕을 이룰때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