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7월 29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주시속에 산아조절에 관한 회칙「인간의 생명」(Humanae Vitae)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회칙은 교회 외부뿐만 아니라 신자들 사이에서 조차 심한 찬반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회칙의 내용을 전달하던 유럽과 미주의 많은 본당 신부들은 신자들의 퇴장 소동까지 겪어야 했다.
이런 사태를 본 교황은 회칙발표 며칠후 하계숙소에서 다음과 같은 고뇌에 찬 강론을 한바 있다. 「문제를 연구하여 이 회칙을 마련하는데 필요했던 지난 4년동안 내게는 무거운 책임감이 계속 되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이런 책임감이 내게 적지 않은 정신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 나는 몇번이나 당황하였으며, 인간적으로는 이런 문제를 결정, 선포해야 할 끔찍한 사도적 사명에 스스로의 부당함을 몇번이고 다시 느꼈습니다. 시대적 여론에 동의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 의견을 고수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내 멋대로 부부생활을 지나치게 괴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딜레마에 빠져 몇번이나 주저하였습니다」
구미 가톨릭의 많은 교단에서는 자국의 신자들에게 이 교황회칙과 관련한 특별교서를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고, 여기에서 각국 주교단은 교황회칙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절대적 순명을 신자들에게 도저히 강요할 수 없었다. 당시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교도권(magisterium)의 본질, 교도권의 주체와 대상, 특히 교도권과 윤리의 관계에 대한 일대 논쟁이 전개되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바오로 6세 교황의 산아조절에 관한 회칙이 가르치는 내용(자연적 방법 이외의 모든 인위적인 피임방법을 금함)을 모르고 있거나 알고도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는 일선 사목자들조차도 신자들에게 그것을 지키도록 강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물론 모두들 교황과 주교들의 가르치는 권위, 교도권 그자체를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의 신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백성들에게 파견하시며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도록 명하셨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말을 믿도록 촉구하셨다(마르꼬16,15-16: 마태18,19-20).
이는 교도권의 권위가 단순한 사회학적인 이유, 즉 거대한 10억 가톨릭신자 단체의 질서유지와 일치를 위한 일사불란한 명령과 순종의 체계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초자연적 실재라는 사실을 말해준다(물론 교계구조가 역사적으로 사회와의 관계중 그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막상 교도권의 가르침에 의하여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윤리문제에 관한 어떤 결점이 주어질때 분석과 비관공격과 냉담한 태도 등의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여기에서 그 근본원인을 모두 고찰하기는 힘든다.
그러나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반권위주의, 합리주의와 경험주의가 오늘날 교회안에도 깊숙히 깔려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교회내의 사조중성서 위주의 사고, 성전(聖傳)의 거부, 하느님 백성의 일반사제직에 대한 오해, 반성직주의 등도 그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는 교도권에 대하여 명현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 「사도들로부터 전해진바는 하느님 백성의 생활을 거룩히 인도하고 믿음을 북돋아 주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 이 성전(聖傳)은주교의 직위를 계승함으로써 진리의 확실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설교에 의해 그 이해가 깊어진다」(계시헌장 8). 교황과 주교들은 「진리의 은사(Charisma)」를 받았고 그들은 그 은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믿음에 대한 유권적 해석을 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계시헌장 10하 참조).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1870년 독ㆍ불전쟁의 발발로 중도해산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무류적 교도권에 대한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리를 결정적으로 선포할 때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성을 향유한다. … 그럴때 교황은 교회 잧의 무류의 은사를 특별히 지니고 있는 세계교회의 최고 스승으로서 가톨릭 신앙교리를 설명하고 옹호한다」. 또한 이 무류적 교도권은 교황뿐 아니라 주교단에도 있다: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상의 교도권을 행사할때에 주교단 안에도 존재한다」(교회헌장25).
이를 볼때 교황과 주교단의 무류서은 그들 개인의 무류성이 아니라 교회자체의 무류성의 표현이며 그것은 교회가 보존해온 신앙의 유산, 계시진리를 보존하는데 그 존재 가치가 있다. 물론 그 무류성은 신앙상의 결정뿐 아니라 윤리에 관한 판단을 할 경우에도 해당된다. 하지만 그 윤리에 관한 판단 역시 그 대상이 교회의 신앙상의 유산일 경우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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