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당신의 구원계획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준비하셨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은 오랬동안, 자신들만이 구원 받는다는 서민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서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독선적이면서도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뛰어 넘어 구원은 모든 인류에게 개방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혈연이나 지연,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가 없고 세상 끝에서부터 찾아 온 모든 이들이 그들의 수고와 행실에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이사66, 18~21)는 바빌론에서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이 숱한 고난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지구상의 모든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민족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다르싯은 스페인으로서 당시 세계의 서쪽 끝이며 풋트와 룻은, 아프리카로서 남쪽 끝이고, 모섹과 로스와 두발은 흑해 주변으로서 북쪽 끝이며, 야반은 동쪽 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사방세계의 모든 민족들을 망라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같은 내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지 못해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는 동안 세상 끝에서 온 다른 많은 이방인들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구원을 얻기 위한 네가지 문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은 대단히 좁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보면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마태7, 13ㆍ14)고 했습니다. 문이 좁을수록 사실 내용이 훌륭하며 가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훌륭한 대학일수록 문이 좁으며 좋은 자리일수록 취직의 문도 좁습니다. 명망있는 학자가 되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며 운동의 스타가 되기 위해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먹고 싶은대로 먹거나 마실수도 없으며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과 눈물겨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자만이 성공의 좁은 문에 들어 설 수 있습니다.
둘째는 시간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문 닫은 뒤에 아무리 두드려 봤자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시간이 무한정으로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러나 「그 날」은 분명히 시간이 없어서 당황하게 됩니다. 끝날에 당황하지 않는 자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축복받은 자입니다.
어렸을때 방학을 맞게 되면 시간이 많이 있는 듯이 여겨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노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방학이 절반이 넘어 일주일 앞으로 개학이 다가오게 되면 밀린 일기와 숙제 때문에 초조하고 당황하게 되며 끝내는 개학이 두려워 우는 얼굴로 학교에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준비가 없으면 꼭 그렇습니다.
셋째는 구원에는 특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하느님 백성으로서 뽑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 해서 하느님 나라에 거저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라 해서 거저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들어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21, 31 참조)
마찬가지로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다 해서 거저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주교나 신부라 해서 하느님 나라에 공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특권이란 없으며 단지 있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땀흘리고 수고하며 노력했던 자들만이 정당한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구원은 우리의 판단이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굽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유도 모르면서 매를 맞을때가 있으며 영문도 모르면서 십자가를 젊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하느님의 뜻을 바라볼 때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선한 이에게는 자비로우나 악한 이에게는 엄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에선 멸망의 길은 넓고 시간이 느긋하며 핑계가 끝이 없습니다. 따라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주님 뜻대로 매일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신앙인답게 선하고 거룩하게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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