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예수께서는 호민관이 지휘하는 로마군대와 유대아인들의 경찰에게 붙잡혀 결박 당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다. 확실한 죄목도 없이 붙잡았고 붙잡은 당국자들은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먼저 안나스에게 끌려 가셨다. 안나스는 기원 6년 유대아의 로마 총독 꼬뽀니우스치하에서 대제관직을 받았고 15년 발레리우스 그라뚜스 총독에 의하여 면직 되었으나 그 후로 다섯 명의 아들이 대제관직에 오르는 등 안나스 가문의 세력은 막강하였다. 예수 체포당시의 대제관 가야파는 안나스의 사위였다. 가야파가 체포된 예수를 먼저 장인 안나스에게 보낸 것을 보면 안나스의 세력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력이 있다 해도 현직에 있지 않는 한 세력가에게 죄인을 파송하여 심문한다는 것은 예수를 강도 잡듯이 야밤중에 체포할 때부터 떳떳하지 못한 법 절차임을 알 수 있다. 시작부터 해괴한 재판이었다. 유대아의 재판은 인권사항보다도 종교사항을 주된 관할사항으로 하고 종교사항은 동시에 정치문제와도 결부되어 있었다. 사형에 해당되는 중죄는 하느님을 모독한 죄와 민족의 신성성을 범한 죄로서 그들의 국가보안법의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구체적으로는 우상숭배, 마법, 설독(褻瀆, 말로 하느님을 모독함), 안식일 파계, 살인(피를 흘리는 것은 반 율법임), 간음이며 이밖에 할례법 위반, 과월절 불이행이 사형 죄에 속한다. 이러한 죄를 심판할 때 사실 심리는 중요하지 않고 두 사람의 증인이 있으면 죄가 성립되며 (신명 19,15: 마태 18,16) 유죄판결은 재석인원의 과반수, 사형확정은 절대다수 더하기 둘의 표가 필요했다. 부녀자, 미성년자, 노예는 증인자격이 없고 죄인의 변호인이 허용된다(요한7,50~51). 사형 죄의 재판은 대제관이 의장으로 있는 산헤드린이라 불리는 최고의회에서 행한다.
의회의 구성원은 유명가문의 원로들, 전직 대제관, 제관족의 사두가이파, 소수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등 모두 71인이며 재판심리에는 23명이면 정족수를 이룬다. 중대한 사안은 야간법정에서 다루지만 사형선고는 아침까지 기다려야 했다. 사형의 경우 최고의회는 로마당국의 추인을 받아야 되었다.
아무 죄목도 없이 잡힌 예수는 전직 대제관 안나스에게로 끌려 갔던 것이다. 안나스는 그동안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어서 예수에 대한 호기심이 컸지만 자기 신상보호정치에 능했기 때문에 자기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즉각적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는 예수의 포승을 풀 필요도 없이 그대로 가야파에게 이송하였다. 가야파는 얼마 전에 최고의회에서 예수에 대한 음해를 모의하고 있을 때에 온 백성을 대신하여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더 났다라고 말했던 자이다(요한 11,50: 대목 263)
예수가 도착했을 때 가야파 관저에는 영향력 있는 제관들과 율법학자들 원로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밤에 일처리를 하려는 것이었다. 가야파는 내심 일 처리에 몰리고 있었다. 그는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했다.
첫째, 뚜렷한 죄목 없이 끌려온 예수에게서 율법학자들이나 민중의 구미에 맞는 죄목을 얻어내야만 했다. 사실 그를 죽일 음모를 꾸밀 때에 그의 죄목은 라자로를 소생시키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여 군중이 많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요한 11,47~48). 둘째는 예수를 사형에 처해야겠는데 이렇게 됐을 경우 불편한 관계에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를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로마의 점령 하에 있는 유대아인들은 국내에서 사형을 결정하는 재판은 할 수 있었으나 사형집행은 로마인의 재가를 받아야만 했고 그 집행은 로마인들이 하였다. 셋째로는 가야파는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오늘은 안식일 전날, 안식일 법규가 발효되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가야파는 예수의 제자들에 관한 것과 무엇을 가르쳤느냐에 관하여 물었다.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에 신경을 썼을 것이고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렇다 아니다라고 대답하시지 않고 당신은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 했고 많은 유대아인들이 당신 말씀을 회당과 성전에서 들었다고 하였고 따라서 아무것도 비밀리에 말한 것은 없다. 내 말을 들은 사람이 잘 알고 있을 터이니 나에게 묻지 말고 그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라고 대꾸하였다. 가야파가 피고인인 예수의 자백을 들으려고 한 것은 율법 시행령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묻지 말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증거를 대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대제관에게 면박을 준 셈이었다.
이 행위는 유대아인들에게는「네 백성의 지도자를 욕하지 말라」는 성서말씀 (창세 22,27: 사도 23,3~5)을 어기는 것으로 들렸다. 피고를 경호하던 경관 하나가「대제관님께 그 따위로 대답하느냐」 하며 예수의 뺨을 쳤다. 이 행위도 율법에 어긋난다(사도 23,3). 예수께서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내가 잘못 말한 것이 무엇이오. 왜 나를 때리오」라고 반박하였다. 너희는 지금 불법적으로 행하고 있다라는 뜻이다. 가야파는 심문을 포기하고 사건을 새벽 정식회의에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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