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한 한국교회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고조부께서 훔쳐내지 못했다면 우리교회 최고 성인이신 김대건 성인의 유해는 없어졌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대건신 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한 뒤 40일이 지난 10월 26일,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지키고 있던 포졸들이 저녁식사를 하는 틈을 이용해 김신부의 시신을 등에 지고 미리내까지 달려갔던 이민식의 후손 이재만(바오로ㆍ서울 금호동본당)씨.
『비록 순교를 하진 않았지만 순교의 정신이 없었다면 감히 엄두 내지 못할 일을 해 낸 조상이 자랑스럽다』는 그는 지금도 후손끼리 만날 때면 그 때의 상황을 얘기하며 흐트러진 신앙심을 가다듬는다고 설명한다.
『이민식 할아버지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모셔다 안장하고 지키며 사는 동안 결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손이 없었지요. 평생을 수도자처럼 사시다가 돌아 가셨어요』
이민식은 당시 17세의 나이로 그 무서웠던 박해 와중에 김신부의 시신을 훔치기로 결심, 기회를 엿보다 40일째 되던 날 김신부의 시신을 훔쳐내는데 성공을 했다고 한다. 특히 이재만씨는 고조부인 이민식씨가 김신부를 업고 가는 도중 포졸들과 일반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을 것이라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고향인 미리내의 선산에 김신부의 시신을 안장하고 밤낮으로 지키며 살아오다 1921년 92세의 일기로 선종한 고조부 이민식의 대표적인 후손인 이재만 씨는 원래 이민식를 동생인 이민동의 5대손.
이민식의 직계 후손이 없었기에 자신이 후손으로 갖는 책임 또한 무겁다는 이재만씨는 고조부의 신앙을 훌륭하게 본받아 후손들에게 전하고 성인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이 지금 맡겨진 후손들의 책무라고 강조한다.
『시복 시성당시 성인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교회당국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순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어 성인 반열에 오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현재 서울가정 법원 청소년 선도위원, 성동구치소 교회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이재만씨는 무엇보다도 그 당시의 순교정신이 지금은 많이 희석돼 가고 있어 안타깝다며 그들의 시앙적인 모범을 되찾아 가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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