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공동대표=장용주 안충석 문규현 신부)이 주최한 천주교청년백두산순례단은 8월 13일부터 19일까지 북경, 연길, 백두산, 두만강, 심양에 이르는 통일순례를 마치고 19일 귀국했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통일에 대해 실천적인 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순례단은 신부 8명 수녀 8명 수사 2명 남자평신도 30명 여자평신도 64명 등 총1백12명으로 구성됐다.
사제단은 순례후 참가자들이 지속적으로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모임을 주선할 예정이며 먼저 9월 2~3일 서울 마리스타교육관에서 참가자들의 평가 회를 겸한 피정을 실시한다. 또한 사제단은 이번 순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참가의 대상을 넓히는 동시에 보다 깊이 있는 프로그램으로 순례를 지속시키고 교회전례와 부합된 통일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도할 예정으로 있다.
반쪽의 해방, 분단 50년을 앞두고 시작된 통일을 향한 발걸음은 동강난 허리를 어루만지는 것으로 시작됐다.
8월 13일 분단의 현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경기도 연천의 태풍전망대. 형제의 가슴에 총을 들이 대고 서로 악다구니를 써는 대남 대북방송을 들으며 우리가 과연 이 적대감을 극복하고 내 누이 내 동생이라 얼싸안을 수 있을까 머리가 무거웠다.
찢겨진 산하를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 서울에서 60여km, 1시간가량 걸린다는 거리를 교통체증으로 5시간여 만에 도착한 것은 통일로 가는 순례여정이 그 만큼 간단치 않은 것임을 상징해주는 것 같았다.
지난 50년간의 모든 이념적 투쟁을 통일이념으로 결집시키고 하나의 문화적 전통과 민족적 동질성의 자락에서 한반도의 출애급을 이루어야 한다는 다짐속에 천주교 청년백두산 순례단은 천지(天池)를 향해 14일 오후 2시 북경행 비행기에 올랐다.
13억 인구에 2백만의 동포가 살고 있다는 중국 땅이지만 내 나라의 땅을 순례하기위해 남의 땅을 밟아야하는 이 현실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우리를 안내하던 조선족 안내원 역시 한국 사람이 백두산을 보기위해 중국에 뿌린 돈이 작년에만 3억불에 달한다며 통일을 역설했다. 아마도 통일은 우리겨레 모두의 염원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북경에서 순례단 일행은 신앙선조들의 발자취가 어린 남당성당과 북당성당 등지를 둘러보며 이승훈이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기 위해 「베드로」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듯이 순례단은「하나 된 조국」의 초석을 다지는 통일사도의 사명감을 불태웠다. 성모승천과 민족해방의 양대 축일인 8월 15일 순례단은 신학교인 중국천주교신철 학원에서 봉헌한 대축일미사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이를 확인했다.
16일 순례단은 드디어 내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연길로 여정의 고삐를 틀었다. 연길로 가는 밤비행기는 순례단의 통일을 행한 열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연길 도착 후 맨 먼저 연길성당을 찾아 미사를 봉헌하고 백두산 자락에 있는 안도현 홍기촌 조선족 민속마을까지 6시간 밤새 달려 도착한 순례단은 고된 여정 속에서도 한시라도 빨리 민족의 영산을 보고픈 마음에 아침식사만 서둘러 하고 백두산을 향한 여장을 꾸렸다.
오전 10시경「장백산」이라 쓰인 백두산 입구에 도착한 순례단은 차로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백두산 천지까지의 길을 도보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민족의 영산에 어린 한숨소리, 나무등걸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주저리주저리 맺혀있을 한 핏줄의 땀내음을 폐부 깊숙이 맡아보고 싶었던 까닭일 것이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시작된 수례의 길은 길가에 핀 들풀들이 고향의 그것과 다름없음에 이곳이 중국이 아니라 처음 와 본 고향의 어느 산하처럼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산을 오를수록 거세지는 비바람을 헤치며 오르던 순례단이 장백폭포가 보이는 흑풍구를 지나자 영산은 우리의 감상적 통일이념을 꾸짖기라도 하듯 더욱 거센 비바람을 몰아쳤다.
순례 전 열번 오르면 서너번 밖에 천지를 볼 수 없다던 현지 안내인의 말이 불길하게 자꾸 떠올랐다. 순례단이 이대로는 갈수 없다며 정상의 2백여 미터 밑까지 올랐을 때 전방 10여 미터를 분간할 수 없는 안개와 머리만한 돌덩이를 날릴 정도의 세찬 비바람이 앞을 가로 막았다.
백두산 천지에서 통일사도로 거듭나기 위한 세례갱신식, 통일을 염원하며 거행하기로 한 천지 물과 백록담 물의 합수식 등으로 상징되는 통일을 향한 준비로는 이뤄질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상 오르기에 기대를 걸며 그 추위와 비바람을 견디던 순례단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산할 때 우리의 산에 일제 「토요타」가 쉴새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민속마을로 돌아와 통일염원미사와 백두산 자락의 물로 세례갱신식을 거행한 순례단은 통일의 앞길에는 이처럼 많은 장애들이 있음을 경험했다고 고백하며 하나가 되는 길의 걸림돌 제거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이튿날 순례단은 눈앞에 북녘 땅이 보이는 도문으로 마지막 순례의 발걸음을 옮겼다. 함경북도 남양시와 연결되는 두만강 가에서 순례단은 학교간 사이 강물이 불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시골 학생의 심정으로 분단의 서글픔을 체험했다.
손에 잡힐 듯 눈에 아른한 저 산하. 그러나 갈수 없는 그 곳은 분단체제에 안주해온 우리를 꾸짖고 있었다.
통일이 되면 내 빵을 빼앗길 것만 같아 이대로 만족해오며 살아온 우리를 원망하는 것만 같았다.
이 두만강 가에 옛날처럼 우리 동포를 실어 나르는 뱃사공이 생겨나길 기대하며 순례단은 고국으로 가기위한 밤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밤하늘 속에 순례자들은 고단한 몸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한 하늘아래 사는 북녘동포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대들은 내 형제들이며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 무너진 철책선 위에서 얼싸안고 해방춤을 추기위해 예수께서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해 자신을 내어 놓으신 것처럼 나도 통일을 휘한 화해의 제물이 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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