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체포에서 대제관한테 끌려가 심문받는 과정과 그 사이에 베드로의 주님 부정 상황은 공관 세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의 보고가 세부상황에서 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예수께서 잡히신 후 먼저 전 대제관이었던 안나스에게 호송되었고 베드로의 첫번째 부정, 그리고 대제관의 심문후 가야파에게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가 체포되어 대제관 가야파에서 넘겨진 것으로 되어 있다. 먼저 끌려간 곳과 첫 심문을 받은 곳이 어디인가가 결정되는데 따라서 베드로의 부정이 어디서 있었는가도 달라진다. 우선 공동번역에서 「대사제 안나스는 예수를 심문하여」(요한18, 19)라고 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지적해 둔다. 원문에는 대사제에 붙는 「안나스」라는 말이 없다. 합본복음서 형식으로 꾸민 라·그랑쥬의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소식」이란 책은 체포→안나스에게→가야파에게→베드로의 부인→가야파의 심문 순으로 정리하였다.
안나스와 가야파의 관계와 안나스의 사회적 위치를 감안하면 먼저 안나스에게 호송하는 예우로 납득할 수 있고 가야파의 법적인 위치와 베드로가 대제관 관저에 있을때 진술된 관저 상황 기록 등을 감안하면 첫 심문을 가야파 관저에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예수께서 잡히실때 제자들은 뿔뿔이 달아 났다고 했는데(마태26, 56) 베드로는 멀리서 잡혀 가시는 주님을 따라가 주님이 심문받는 대제관 관저 바깥 마당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 가는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베드로는 혼자가 아니고 또 다른 제자와 함께 있었고 이 다른 제자는 대제관과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이 날 밤은 대제관 관저에 사람들이 들어 가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문지기가 드나드는 사람을 점검하였다. 베드로와 동행한 다른 제자는 관저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고 문지기 하녀에게 부탁하여 베드로를 들어가게 하였다. 그런데 이 다른 제자가 누구인가? 전통적으로 이 다른 제자는 요한 복음서를 쓴 요한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 이유는 이 제자에 대한 언급이 요한복음서 뿐이고 요한 자신이 목격한 일들을 적었다는 것이고 요한은 복음서에서 「사랑받던 제자」라는 말로 표현 되었듯이 예수의 사랑을 받는 제자로서 예수의 수난행정을 끝까지 따라 다녔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문제가 있다. 첫째 갈릴래아의 어촌출신 어부가 어떻게 최고 권력자 대제관과 친분이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설령 친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관저의 말단 직원인 문지기에게 심문없이 무사 통과할 만큼 잘 알려져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시초에 예수를 찾아 대화를 나누었고(요한3, 1) 침향을 가지고 예수의 무덤을 찾아 왔던(요한19, 37) 예루살렘 최고회의 의원 니꼬데모가 아니겠는가 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사람의 얼굴은 문지기 하녀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문지기에게 잘 말해서 베드로를 안으로 들어가게 했던 것이다. 베드로도 문지기 하녀가 알아볼수 있을 만큼 낯익은 얼굴이었을까. 하녀는 그를 알아 보고「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나자렛 예수와 일당이지요」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짐짓 「무슨 소리요 나는 아니요」라고 첫번째로 부인하였다.
베드로는 거짓말로 위기를 벗어나 관저 안뜰에 들어갔다. 밤과 낮의 일교차가 심한 이 곳 밤은 추웠다. 관저 마당에는 하인들이 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고 있었다. 베드로도 그들사이에 끼어 손을 쬐고 있었다.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본 하인들 (또는 다른 하녀)이 또 다시 같은 말을 하였다. 「이 사람 나자렛 예수와 한패 아냐」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두번째로 부인하였다. 「아니오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그동안 안에서는 대제관의 심문이 계속되어 한 시간쯤 흘렀다. 베드로는 안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궁금하였지만 짐짓 모르는체 의심을 잡담을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말씨를 듣고 그들은 확신을 얻었다. 「틀림없이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당신 말씨를 들으면 알 수 있소」라고 몰아 세웠다. 갈릴래아인 사투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중에는 예수 체포시 베드로에게 귀를 얻어맞은 대제관의 하인과 친척되는 사람도 끼어 있었는데 「동산에서 당신이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러시오」라고 꼬집었다. 베드로는 거짓말이면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저주성 맹세를 하면서 「당신들이 말하는 사람을 나는 모르오」라고 시치미를 뗐다. 이때 새벽닭이(두번) 울었고 심문을 끝내고 나오시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바라다 보셨다.
베드로는 「새벽닭이(두번) 울기전에 너는 나를 세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후회막심하여 밖으로 나가 통렬히 울었다. 후대는 5ㆍ6세기에 베드로의 통회를 기념하여 「닭울때의 베드로 성당」을 지어 오늘까지 이 사건을 잊지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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