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학생운동(Catholic Student Movement)은 다른 분야의 가톨릭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대학생들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현세질서(사회)의 변화 특히 대학에서의 선교 즉 복음화를 목적으로 전개하는 운동을 말한다. 가톨릭 관점에서 보면 대학에서의 평신도 사도직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국의 일반 학생운동과 마찬가지로 가톨릭학생운동은 넓은 의미의 선교, 즉 민주화와 사회정의와 같은 복음정신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 가톨릭 학생운동은 지난 50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 및 변화해왔다. 평신도 영성계발에서 복음전파, 교회쇄신과 토착화 그리고 일반 학생운동과 함께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투쟁에 이르기까지 가톨릭학생운동은 폭넓은 운동의 이념과 방법론을 발전시켜 왔다.
이 과정에서 굴곡도 많았는데 전국단위의 조직이 두번이나 해체되는 경험을 겪기도 하였다. 아무튼 가톨릭학생운동은 과거에 비해 역동성은 약간 약화되었지만 현재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 학생회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교구별 연합회 이외에도 전국차원에서는 전국가톨릭대학협의회(전가대협)가 구성되어 있다.
▩ 간추린 역사
가톨릭학생운동의 뿌리는 일제시대에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나름대로의 조직에 바탕하여 운동을 시작한 것은 가톨릭학생총연합(총연)이 설립되었던 1954년부터이다. 1950년대에 성가대, 주일학교, 레지오 마리애 등 본당에 기반한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1960년 4ㆍ19학생혁명과 이듬해 5ㆍ16 군사쿠데타를 겪으면서 활동의 중심이 본당에서 대학 캠퍼스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조직활동도 레지오 마리애 방식에서 소그룹을 중심으로 하는 셀(Cell) 방식으로 바뀌었다. 1960년 나상조(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최초로 대학생 사목전담 신부로 임명되었고 1961년에는 중고등부 학생회와 대학생회가 분리되어 독자적인 조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렇게 대학을 기반으로 한 전문적 평신도 사도직 운동으로 자리를 잡은 총연은 1960년대 초반 전국 1백15개 대학(교) 가운데 58개 대학에 가톨릭대학생회를 조직할 정도로 급속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가 알려지기 시작한 1964년에 열린 제10차 전국대회는「그리스도교의 재일치」 즉 에큐메니칼운동을 주제로 다루었고 이듬해인 1965년에는 「대학사회에서의 가톨릭학생운동」이란 주제가 논의되었다. 이러한 주제를 통해 가톨릭대학생의 사회정치적 의식은 급속하게 고양되었고 사회참여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다. 따라서 1960년대 후반부터 자연스럽게 일반 학생운동과 접하게 된 가톨릭 대학생회는「전통적」인 의미의 평신도 사도직운동의 틀을 넘어서 점승하는 사회경제적 모순과 민주주의의 문제를 운동의 과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968년 열린 전국대회에서는「민주주의와 저개발국의 민족주의」란 주제에 대해 탐구하였고 1968년 발생한 강화도「심도직물사건」에 대한 주교단의 적극적인 대처는 이러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교회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증가하는 한편 활동 방식을 둘러싼 갈등도 간혹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1969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아시아 가톨릭학생사목 지도자 회의」에 참가한 나길모(W.J.McNaughton’ 당시 총연 총재주교) 주교와 나상조 지도신부는 귀국 후 학생사목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이를 계기로 체계적인 대학생 사목이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하였다.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을 지향하는 국제가톨릭학생운동(IMCS: International Movement of Catholic Students)은 전세계 80개 이상의 회원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파라에 세계본부를 그리고 필리핀 마닐라(94년까지는 홍콩)에 아시아사무국을 두고 있다(한국 50년대에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이 결과 1971년 처음으로 전국 가톨릭학생 지도신부 회의가 열렸다. 1970년대 초반 총연은 이미 13개 교구 연합회 산하에 75개 단위 학생회 소속 1만여명을 포괄하는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970년 4월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과 공동으로「부활과 4월혁명」이란 강연회를 개최하였고 이후 이 강연회는 80년대 말까지 4ㆍ19 혁명을 기념하는 대표적 행사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총연이 확대 발전하는 과장에서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1972년「크리스찬 사상 및 문화운동」 사업을 총연 사무국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면서 불거져 나와 결국 총연은 해체되고 만다.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겪다가 75년 2월 다시 전국 회장단 회의가 열려「대한 가톨릭 학생 전국협의회(전협)」가 탄생한다. 전협은 협의회라는 조직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전국 성지순례, 대학인 본당찾기 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가톨릭 학생운동의 내실화를 도모하였다.
1980년 5월 광주의 민주화항쟁은 다른 일반 학생운동처럼 가톨릭학생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 충격적 사건이후 가톨릭 학생운동 내부에서는 보다 체계적인 현실인식과 사회변혁을 위한 실천방법론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졌고 운동의 방향과 내용도 이에 따라 변화하였다.
1970년대의 개인적 또는 추상적 실천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으로 운동의 내용이 변화하였고 당시 학생운동의 이념과 방법론이 적극 도입되었다. 당시 가톨릭학생운동을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는 1981년「역사적 예수연구」, 1982년「제3세계와 그리스도교」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가톨릭학생운동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한편 급진적 사회 변혁이론을 학습하면서 가톨릭 학생운동은 정치적 현안에 대한 성명서 발표와 가두시위를 통하여 점차 정치적인 문제에 직접 참여하였고 이로 인하여 정부 및 교회당국과의 마찰이 잦아지게 되었다. 교회 당국의「몰이해」와 학생들의 급진적 입장 사이에서 해결점이 보이지 않자 담당주교는 전국적 차원에서 가톨릭 학생운동을 이끌면 전협을 1984년 10월 해체하였다. 이후 일부 학생의 자발적인 재건 움직임이 있었으나 오래가지 못하였고 전국단위에서의 활동은 더욱 깊은 좌절과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1983년부터 한국은 국제가톨릭대학생운동(IMCS)의 아시아 사무국에 3년 임기의 간사를 3번이나 연속해서 파견하고 1988년에는 세계본부에도 파견하는 등 국제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87년 서울과 인천교구의 주도로 7개 교구 대학생 대표자들은 다시 모여 전국조직을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5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92년 10월 24일 정식으로「전국가톨릭대학생협의회(전가대협)」를 발족한다. 새롭게 출범한 전가대협은 신학공부와 평신도의 영성계발 그리고 토착화된 전례양식의 계발 등을 통하여 신앙공동체 건설에 주력함으로써 과거와 달리 가톨릭운동의 신앙적 측면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왔다. 90년대 들어 가톨릭학생운동이「신앙공동체 운동」을 표방하게 된 것은 두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는 가톨릭학생운동은 이 운동을 통하여 본당 중심의 사목체제로 수용하지 못하는 많은 가톨릭대학생들을 포괄하는 중심적인 단체로서 가톨릭학생회를 설정하고 이를 통한 캠퍼스 사목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즉 이는 본당에서 현실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학생과 청년사목의 한계를「공동체 운동」으로 극복해 보고자 한 것이다. 둘째, 가톨릭학생운동이 80년대를 거치면서 발전시켜온 참여, 연대, 투신의 영성을 90년대의「신앙공동체 운동」으로 승화시켜 공동체성과 신앙으로 훈련된 청년들을 양성하고, 이를 통해 선교 3천년대의 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복음화와 교회쇄신의 과제를 실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신앙공동체 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전가대협에서는 1988년 이래 해마다 평균 약 5백명이 참석하는 여름 전국대회를 개최하였고 1992년 이래로는 해마다 약 1백50~2백명의 가톨릭대학생회 간부들을 중심으로 겨울대회를 열어왔다.
이런 행사를 통해 전가대협회원들은 교회론, 그리스도론 등의 기초신학 이외에도 「평신도 활동가론」과「신앙공동체운동론」에 대해 학습, 토론해 왔다. 또한 전가대협은 통일운동에도 적극 참가하여 해마다 여름 국토순례단을 조직하여 파견하는 한편, 1995년 5월에는「통일기원 묵주기도 봉헌시간」을 설정, 전국의 각 학교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봉헌하기도 하였다.
▩ 평가와 전망
지난 5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한국의 가톨릭학생운동은 비록 70~80년대 단절의 경험을 겪기는 했지만 현재까지도 조직과 활동의 기본적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60년대말에 전세계적으로 폭발했던 학생운동이 80년대 접어들면서 쇠퇴한 반면 한국의 가톨릭학생운동은 일반 학생운동과 함께-비록 과거에 비해 사회정치적 영향력은 다소 약화되었지만-여전히 중요한 사회운동세력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전국단위의 조직과 이념의 연속성을 간직해왔다. 이러한 경우는 전세계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30여년간의 군사독재와 그 속에서 단련된 학생운동의 전통이라는 요인도 있지만 그만큼 학생들의 헌신성과 자발성이 강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긍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가톨릭학생운동이 과연 지난 50년간 사회복음화와 교회쇄신에 얼마나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기여했는가? 질적으로 우수하고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를 얼마나 많이 양성했는가? 그리고 현재의 이념과 방법론을 가지고 급변하는 현실과 다가오는 21세기의 도전에 제대로 응답, 준비하고 있는가? 이와 관련하여 그동안 드러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먼저 운동의 연속성 문제, 즉 가톨릭학생운동이 졸업 이후에 새로운 형태로 조직적으로 지속되지 못하고 대학시절의 한때 활동으로 일단락되고마는 문제이다. 대학시절 가톨릭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졸업후 사회에 진출하여 대학시절의 꿈과 이상을 현실속에서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보다는 오히려 직장과 가정 속에 매몰되어 이른바「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또한 이들중 상당수는 본당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제도교회의 보수성과 경직성에 실망하여 또는 신앙의 실존적 의미마저 상실하여 냉담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교회의 학생과 청년사목에 대한 낮은 관심과「투자」에도 부분적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톨릭학생운동의 이념을 대학시절뿐만 아니라 졸업이후에도 실현시킬 수 있는 장기적인 전망과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결여되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와 관련하여 두번째로 주입식 교리교육이 아닌 신학교육과 신앙체험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적인 신앙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가톨릭 대학생은 20대 초반의 순수한 열정과 지적 탐구열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신앙의 실존적, 사회적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모색하는 시기이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분야에 전문적 경험과 식견을 갖춘 평신도 지식인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짐을 고려할 때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과 체계적인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이들을 위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말할 것도 없고 관심과 문제의식 또한 매우 낮은 편이다. 이러한 상황은 장학금으로 해외유학을 보내는 등 미래의 유능한 평신도 지도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해온 개신교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현재 학계는 물론 여성, 환경, 인권, 통일 등 시민사회운동의 여러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수많은 개신교 평신도지도자들이 과거에 대부분 기독교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전문적인 대학생사목팀의 구성을 제안하고 싶다. 다른 분야의 전문(특수)사목도 그러하지만 대학생사목 또한 장기적이고 집단적인 투신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체계적인 지원없이 임명받은 몇몇 사제와 수도자의 개인적이고 헌신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많다. 운동의 역사성을 이어주는 경험있는 평신도 간사와 학생사목을 임명에 의해서가 아니라「제2의 성소」로 받아들이고 장기적으로 투신할 각오가 된 성직자. 수도자가 한팀을 이루어 대학사목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장기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다시말해 대학생사목을 단지 한때의 경험쌓기나「대학생관리」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소극성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남미 해방신학 대부이자「해방신학」의 저자인 구스타보 쿠티에레즈,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의 저자인 남아공의 알버트 로울런, 인도의 예수회 신부인 사무엘라이언 신부 등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와 사목자가 각 나라의 가톨릭대학생회 지도신부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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