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심문이 끝나자 최고의회 의원들은 관저를 나와 물러 갔는데 몇몇은 분풀이를 하려고 남았다. 그동안 예수와의 대결에서 매번 패배를 맛보고 분을 품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가야파의 심문때도 극도로 격분되어 있다가 예수께서 밖에 나오자 능욕을 가하였고 폭력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그들은 예수께 침을 뱉고 양손이 묶인 무죄한 죄수에게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야유를 보내면서『누가 때렸는지 알아 맞추어 보아라』하고 조롱하였다. 예수의 활동당시 군중이 예언자로 떠 받들은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밤새껏 심문은 별 성과를 얻지 못하였고 예수께 능욕을 가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지쳐버린 높은 사람들은 마치 악동들이 동물을 가지고 놀듯 예수를 하인들에게 넘겼다. 졸개들은 윗 사람들이 시동을 건 일을 한층 더 박차를 가하였다. 높은 사람들은 거만한 경멸의 태도를 마음껏 과시하였지만 졸개들은 난폭의 욕구를 힘껏 채울 기회가 온 것이다.
그들은 양손이 묶인 예수를 폐기물처럼 한쪽 구석에 몰아 놓고 마음껏 때리고 치며 갖은 욕설을 섞어『네가 메시아라며? 누가 때리는지 알아 맞추어 보라』며 또 조롱하였다. 밤새껏 시달리고 능욕과 폭행을 당하신 예수는 초췌한 얼굴에 온통 찢겨진 남루한 옷차림으로 폭도들이 이끄는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녔겠지만 이때의 예수의 동정에 대해서는 복음서는 아무 말도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새벽닭이 울었다는 것은 날이 샜다는 신호이고 최고의회가 정식으로 열릴 수 있다는 법적 시간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였다. 밤새 예비 심문에서 별 성과를 얻지 못한 대제관은 시간이 되자마자 의회를 소집할 긴박함에 몰리고 있었다.
오늘은 안식일 전날 금요일, 동짓달의 14일 혹은 15일이다. 이때는 아침 6시경에 해가 뜬다. 재판하기도 전에 이미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한 이 높은 사람들은 모든 절차를 오늘 안으로 끝내야 했다. 이들은 로마의 점령하에 있었고 로마인들은 유화정책을 펴고 유대아 국내일, 특히 종교관계 일은 유대아인들의 자율에 맡겼다. 그러나 유대아인이라 하더라도 생사권 만은 로마 총독의 관할하에 유보하고 있었다. 그러니 가야파가 예수를 죽이려면 먼저 종교문제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을 찾아야 했고 그 죄목은 동시에 정치문제도 되어 로마통치에 중대한 안보문제에 저촉되어야만 했다.
사형을 먼저 결정하고 증언을 조작하는 불법적인 재판을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그럴듯한 위증자들이 필요했다. 예수께서는 한말이나 행동에서 성전이나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몰수 있는 죄목을 발견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비난하는 증언들을 했다. 그러나 그 증언들은 서로 말이 맞지 않아 쓸모가 없었다.
재판관의 자격으로 모인 최고의회 의원들은 증인이 될 수 없고 다만 증인들의 말을 검토해야 한다. 증인들은 사건의 시간, 장소, 세부사항에 대해 따로따로 질문을 받는다(다니13, 51~59). 유효한 증언을 얻지 못하고 난항을 거듭하다가 끝내 공개 증언을 시켰고 좋은 증언 하나를 들었다. 그 증언내용은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은 사건이었다. 예수께서 언젠가『이 성전을 헐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안에 다시 짓겠다』(요한2, 19)라고 한말이었다. 이 말은 율법에 저촉되는 하자가 없는 말이다. 증언자들은 이 말을 바꾸어『나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어 버리고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새 성전을 사흘안에 세우겠다』라고 말했다고 증언하였다.
이 말에는 묵과할 수 없는 불경요소가 담겨져 있다. 첫째 성전을 파괴하겠다는 말은 침략자의 행위를 뜻하며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불경(不敬)을 뜻한다. 둘째『사람의 손으로 만든』것은 우상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사흘안에 다시 짓겠다는 말은 자기가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스스로 하느님을 잠칭(潛稱)하는 말이다. 그러니 신성 모독죄의 요소가 다분히 깔려 있다.
그런데 고발하는 말을 지어내서 말하다 보니 여러사람이 같은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들의 말이 서로 맞지 않았던 것이다. 말을 글자 그대로 따지는 율법학자들은 그들의 거짓증언이 법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