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30의 나이에 요절한 젊은 부제의 일기와 서간을 모은「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바오로딸 발행)는 제목이 암시해주는듯이 풍부한 감성과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로 자연과 인간, 하느님을 사랑한 그의 삶과 영혼을 보여준다.
이 유고집은 사제서품을 몇달 앞둔 1977년 6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의 어느 산에서 불의의 조난으로 목숨을 잃은 김정훈(베드로) 부제의 1주기를 맞아 그의 동창 신부들이 엮은 것이다.
사도법관으로 알려진 고(故) 김홍섭 판사를 아버지로, 평생을 헌신적으로 교도사목 활동에 봉사하고 있는 김자선여사를 어머니로 둔 김부제의 이 유고집은 지금까지 12만부라는, 교회안에서는 드물게 많은 부수가 판매됐다.
성직의 길을 향해 가던 그의 영적 세계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라는 제목은 김부제 자신이 산 정상에서 방명록에 적은 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난히도 사랑했던 산은 김부제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신학교 영성지도 스테판 호퍼신부는 김부제가 깊은 종교적 느낌 속에서 산을 찾았다고 일러준다. 산은 한없이 친절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고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일으키는「신비」로서 드러나는 하느님을 체험케 하는 매개체였다.
유고집에는 그가 신학생으로 생활하던 1972년부터 사고가 나기 직전인 1977년 5월 24일까지의 일기가 연대기순으로 실려있다. 이 일기들에는 그가 성직이라는 헌신의 길을 희구하면서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맞부딪쳐야만 하는 갈등과 고뇌의 자취들이 진솔하게 적혀있다.
『어떤 답을 주실 만도 하였는데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나이다. 오늘같이 광풍이 심히 부는 날』(1972년 5월 18일 일기중에서).
깊은 고뇌속에는 언제나 인간적인 나약함과 한계가 존재했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두운 굴을 지나면서 빛을 발견한다.
『모든 것을 주께 맡겨 그분이 다하게 해드리는 것, 그렇지 않고 내가 해보겠다고 바둥거려야 남고 쌓이는 건 자기 모멸과 쓰디쓴 환멸, 낙담뿐』(1975년 3월 12일 일기중에서).
그의 글이 20여년이 가깝도록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영혼의 순례 여정이 아주 솔직하게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것이 깊은 사색을 통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는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비록 사제품을 받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김수환 추기경이 그의 장례식에『베드로는 죽음을 통하여 서품되었습니다』라고 했듯이 자신이 남긴 이글들을 통해「산 바람 하느님」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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