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통해서 볼때 인간의 역사는 온갖 죄악으로 점철된 범죄의 역사입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세상 끝날까지 범죄를 일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또 끈질기게 인간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을 달래시며 용서하고 계십니다. 인간 하나 하나는 정말 하느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녀들입니다.
오늘 세 독서는 모두 우리에게 감동적인 내용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출애32, 7~11ㆍ13~14)는 하느님을 저버리고 모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모세가 하느님께 간절하게 매달리는 장면이며, 제2독서(Ⅰ디도 1, 12~17)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자신의 죄많은 과거를 상기 시키면서 예수님이야말로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는 하느님의 자비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독서인 복음에서는, 세 비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하느님은 길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 오셨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번째 비유인「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는 성서의 꽃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문학사상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단편소설로 높이 평가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많은 인생들 입니다. 어제 용서 받았지만 오늘 다시 용서 받아야 하고 내일도 역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죄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인생의 여정은 필연적으로 실패를 통해서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이 더 크게 빛나는 것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서커스단의 놀라운 묘기를 보면서 단원들이 그 같은 묘기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수백 번, 수천 번의 실수의 반복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지만 그러나 끝내는 하나의 묘기를 마스터할 수 있듯이 인간의 완성이라는 것도 역시 그런 것입니다.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실패가 따르지 않는 성공이란 있을수 없으며 실패는 또 아프고 부끄럽지만 실패를 통해서 인간은 자기 완성의 길을 걸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저질렀던 모든 죄의 잘못도 틀림없이 하느님 안에서의 완성을 이루는데 일종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모 잡지에 매월 수필을 기고할 때 저는 정말 그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배당된 분량은 원고지 7매였는데 이 일곱장의 원고를 완성하려면 원고지 30장은 찢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글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소질도 없는 일이기에 제발 그만 좀 하게 해달라고 해도 잡지사에서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입니다. 우연히 그 잡지사에서 모 문인과 만난 일이 있었는데 그분이 제 글을 아주 재미있고 감동깊게 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부끄럽고 황송해서『당신이야말로 글 쓰는 전문가이지만, 나는 정말 쓸 줄도 몰라서 매월 원고지 수십장씩 찢어 발겨야 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도 그랬습니다. 자기도 명색이 소설가지만 한 장의 글이 써지지 않아서 밤새 몸부림을 칠때가 있으며 서너매의 글을 쓰기 위해서 수십 장의 원고지가 휴지통에 쑤셔 박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들은 펜만 들면 술술술 글이 물 흐르듯이 써지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떤 예술가, 어떤 과학자, 어떤 성직자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실패의 연속을 딛고 일어서서 끊임없이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고 위대함이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인간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결국은 인간의 실패와 범죄 위에서 빛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나 범죄까지도 아름답고 위대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나려는 의지와 결심때문이지 인간이 오로지 그 실패와 범죄에 탐닉되어 있다면 그것은 정말 꼴불견이요 구제불능입니다. 거기엔 아무런 아름다움도 가치도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 자신을 진실되게 바라봐야 합니다.
하느님은 길잃은 자를 찾아 오셨습니다.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길잃은 줄도 모르고 자기가 눈닫힌 줄을 모르며 또 자기의 귀가 닫힌 줄을 모른다면 그의 영원히 구제불능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은총을 만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의 실패와 죄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실패를 찾아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딛고 일어섭시다. 하느님의 은총이 바로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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