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교회 여성들의 특징중 하나는 전교와 신앙생활을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이「공동체가」를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취회여인(聚會女人)이라고 불리어지면서 표출되었던 이 공동체는 신앙적인 의사에 의해 자발적 동정을 선택했던 처녀들과 수절을 하는 과부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 도우며 신앙을 실천, 초기교회 교세확장과 체계적 교회창립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양반출신의 윤점혜 아가다는 동정을 지키며 공동체 생활을 통해 신앙을 증거하고 실천했던 초기교회 대표적인 여성이다. 강완숙의 집에 10여년간 머물면서 주문모 신부에게 직접 세례와 영세명을 받고 과부로 행세했던 윤점혜는 동정녀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전교활동을 앞장서는 등 신유박해때 순교한 동정녀들 중에서도 그 행적이 가장 뛰어난 여성으로 손꼽히고 있다.
◆ 생애
경기도 광주 양근 지방에서 향반(鄕班)의 딸로 태어난 윤점혜는 1795년 순교한 윤유일의 사촌누이다. 어려서 모친에게 신앙교육을 받았던 그는 가톨릭의 신심생활이나 교리를 알게 되면서부터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전념하고자 하는 원의를 가지게 되었다.
윤점혜는 17~18세에 접어들면서 동정허원 결심이 방해받을 것을 염려, 남자옷을 지어 입고 삼촌댁으로 도망가는 일화를 남길 정도로 동정으로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의 결심을 이해 못하는 가족들의 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윤점혜는 동정녀로서 하느님에게 헌신할 것을 더욱 굳게 다짐했으며 주위에 신앙과 복음의 은혜를 전할 생각에 몰두했다.
1795년 그녀는 모친과 함께 상경하지만 사촌 오빠 윤유일이 주문모 신부 입국을 도왔다는 죄로 사형 당하자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뒤 윤점혜는 모친이 별세한 후 강완숙 집에 기거하였으며 교회활동을 돕다가 1801년 신유교난시 체포돼 25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 활동
윤점혜는 공동체를 이룬 다른 동정녀들과 함께 체계적으로 교리를 배워 익히고 강완숙 못지않게 열심히 전교활동을 벌인다. 동정으로 사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난을 막기위해 허가의 아내라 속이고 과부생활을 했던 그는 처녀들의 교리지도에 주력했으며 강완숙과 함께 주문모 신보를 보좌, 선교활동에 앞장섰다.
특히 주신부가 머무르면서 각종 교회활동과 전례 의식을 주관했던 강완숙의 집은 각지에서 몰려든 과부나 동정녀들이 미사와 교리학습에 참석하는 등 의식이나 교회행사에 필요한 준비가 착실하게 이루어지던 곳이어서 윤점혜의 활동은 교세확장에 큰 밑밭침으로 작용한다.
강완숙과 더불어 당시 교회 안에서 널리 이름이 알려졌던 그는「천주학을 고집하고 굽히지 않아 마음을 고치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을만큼 지칠줄 모르는 포교활동을 벌인다.
윤점혜는 복음선포와 함께 자신의 성화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진다. 매우 엄격한 생활과 잦은 금식, 엄한 극기, 끊임없는 기도와 묵상을 병행했고 자신의 수호성인인 아가다성녀처럼 순교할 수 있게 되기를 입버릇처럼 얘기하곤 했다고 기록들은 밝히고 있다. 또한 종종 동정 마라아의 현시를 체험하기도 했는데 그같은 경험들은 윤점혜의 신심활동을 더욱 고무시켜 주었다.
1801년 5월말경 강완숙과 함께 체포된 윤점혜는 석달동안 옥에 갇혀 신문과 갖은 고문을 받는 고통을 겪었다. 그는 함께 같은 날 처형되기를 원했음에도 서소문에서 처형된 강완숙과는 달리 양근 땅으로 송치돼 참수 당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윤점혜의 목이 떨어질때 젖과도 같은 흰피가 솟았다고 한다.
◆ 여교인 공동체
윤점혜가 활동기반으로 삼았던 공동체는 남녀가 반드시 혼인을 해야 한다는 관념과 제도사상을 벗어나 순수 종교적인 목적에서의 수정관(守貞觀)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이것은 남존여비의 개념에서 발생한 성리학적 여필종부의 억압적이며 제도적인 수정관과는 다른 것으로 당시 사회제도에 항의하는「여성해방운동」의 성격도 띤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오늘날 수도원 생활과 유사한 공동생활을 하면서 때로 교회내에서 필요한 서적을 등사 하거나 한글로 번역, 교리보급에 앞장섰으며 성물을 제작 판매함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북돋웠다.
여교인의 공동체 형성은 한국교회의 본격적인 수도공동체 전사(前史)로 언급될 만큼 당시 선교활동과 교회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결혼을 거부한 당당한 생활태도는 그 사회기층을 동요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했고 여성능력의 확산이라는 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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