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동양에서」라는 말대로 2천대의 여명이 아시아에서 밝아오고 있다. 세계사의 흐름은 유럽 중심의 대서양 시대에서 아시아 태평양 중심의 환태평양 시대로 넘어오고 있으며, 종교ㆍ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지금까지의 대립과 갈등을 청산하고 동서 사상이 대화와 조화를 통해 인류의 정신과 영성에 새로운 빛과 활력을 줄 열린시대, 동서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2천년대 교회의 장래는 아시아에 달려 있다』고 언명하셨다. 「발에 묻힌 보화」와 같던 동양의 열성과 사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아시아 신학의 출현이 고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종교학을 전공하고 동양철학에도 조예가 깊은 한정관 신부가「아시아인의 신학과 신앙」(가톨릭출판사)이라는 노작(勞作)을 출간하였다. 그간 가톨릭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 발표하였던 7편의 논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사제생활 25주년의 은경축 기념으로 내놓은 것이다. 한국교회를 위한 귀한 선물이라 생각하며 감사와 축하를 드린다.
이 책은 동양의 전통 사상인 유교, 불교, 도가 사상 및 민간 신앙을 폭넓게 연구하고 그리스도교 영성과 비교 고찰함으로써 상호간의 상통점과 상이점을 밝히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동양인의 심성세계의 구조와 도정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는 인간의 내적세계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동양 정관(靜觀)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동양인의 심성세계를 보다 깊이 파악하며, 「노장철학의 도(道)에 대한 이해」에서는 도가와 그리스도교 궁극자관(穹極者觀)의 특성을 밝히고 있다. 「신비체험과 그 표현에 관한 고찰」은 그리스도의 신비체험과 도가, 불교의 신비체험을 생명과 공허(空虛)를 중심으로 비교 고찰하면서 동양인의 신비체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며, 「동서 영성의 융합 시도」에서는 아빌라의 데레사 영성과 유교의 영성을 비교하고 동서 영성의 융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외에도 불교의 좌선과 그리스도교의 관상을 비교하면서 양자의 특성을 밝히고, 제종교의 다양한 신관에 대한 고찰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관의 특성을 올바로 인식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전체 논문의 목적은 저자의 말대로 『길이요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보편적 아시아인의 심성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함』에 있다. 한마디로 동양영성의 조명과 복음의 토착화를 지향하고 있다.
동서사상을 비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도 저자는 깊은 연구와 예리한 통찰력으로 각 사상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리스도교와의 상통성과 상이성을 밝히고 있다.
이렇게 동양사사을 폭넓게, 깊이 연구하고 편견없이 형평을 유지하면서 그리스도교 사상과 비교한 연구 업적으로는 이 책이 한국천주교회에서 최초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이벽이나 기타 한국교회 성조들의 토착화 정신에 대한 연구서들이 나왔으나, 아시아인의 다양한 종교 전통과 영성을 폭넓게 연구하고 그리스도교 사상과 비교한 연구서는 전무한 상태였다. 이런 점에서도 이 책의 의의는 적지 않으며, 아시아 신학과 한국 신학을 위한 문 열음의 효시가 되리라 본다. 이 책은 아시아인의 사유방식과 영성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복음의 토착화와 아시아 신학의 정립에 자극제와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
동양의 정신적 토양에 복음을 토착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시아의 복음화라 할만큼 중요한 과제요, 더욱이 이 세상종말까지 지속될 과정적 작업이라 볼때, 「임무는 막중하고 갈길은 먼」(任重而道遠)과업인 것이다. 이 복음의 토착화는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가 수행해야 할 과업이요 책무이다.
앞으로도 저자가 학문적 연구와 실천적 수행이라는 학자로서의 산고를 통해 복음의 토착화를 위한 유익한 작품들을 출산해 주리라 믿고 기대한다. 아울러 동양의 전통 사상과 영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한국인으로서의 그리스도교적 도반(道伴)들의 관심과 구독은 저자에게 큰 격려가 되고 복음의 토착화와 한국 신학의 정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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