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자 유다스가 자살한 것은 금요일 아침이었다. 그는 대제관들과 장로들이 금요일 새벽 서둘러 예수를 죽이기로 판결을 내리는 것을 보고 일을 벌였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대제관 가야파는 예수를 다시 결박하여 로마의 유대아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게 압송하였다.
그때가 아침 여섯시쯤 이었다. 당시 밤시간의 마지막 두 시간은 「닭 우는 때」(자정에서 3시까지) 즉, 제3시와 새벽시(3시부터 6시까지)였고 로마 군인들은 이미 이른 아침부터 근무에 임하고 있었다. 로마의 유대아 총독 빌라도는(기원 26~36년까지 총독) 평상시에는 지중해 해안도시 카이사리아에 총독부를 두고 그곳에 상주하지만 대축제기간 동안은 예루살렘으로 옮겨와 일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헤로데 궁전에 거처를 정하고 대축제 당일에는 성전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계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소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성전 북쪽에 붙어있는 안또니아성에 자리를 옮겨 군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끌려가신 길은 성전 남쪽에 있는 가야파궁에서 시내를 통과하여 성전북쪽 안또니아성에 이르는 길이었다. 총독관저라고 번역한 쁘레또리움은 점령지에 주둔하는 로마군의 본영(本營)이며 유대아 주둔 로마군의 총사령관이기 한 총독의 관저이기도 한다.
여기서 모든 작전명령이 내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 지방의 재판을 주관하는 재판소이기도 하며 총독이 거주하는 관저이기도 하다. 쁘레또리움이란 개념은 일정한 장소라기 보다는 총독이 있는 곳, 그곳이 본영이다. 유대아인들은 왜 자기들의 죄인을 로마총독에게 압송했는가. 그들은 30년경에 스테파노를 돌려 쳐 죽였고(사도 7, 58~60), 예루살렘교회의 주교였던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역시 돌로 쳐 죽였다(60년경). 유대아인들은 예수를 돌로 쳐 죽이려고 두번이나 시도한바 있었지만 실패하였다(요한 8, 59: 10, 31). 이번에는 그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꼼짝도 못하게 예수를 돌로 쳐 죽일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예수를 로마인들의 손에 넘겼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넘겨 받고 유대아인들에게 물었다. 어떤 죄목으로 이 사람을 자기에게 데리고 왔으며, 유대아인들의 법대로 처리하지 않고 왜 자기에게 데려왔느냐고, 빌라도는 점령지 총사령관으로서 총독으로서 예수에 대한 정보를 나름대로의 통로를 통하여 익히 알고 있을 것이고 그가 아는바에 의하면 예수문제는 자기로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체포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대아인들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이르기까지 군인들을 붙여 주는 등 협력은 하였지만 적극적인 개입은 하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특히 전에 갈릴래아에서의 대학살 사건도 있고 해서(루가 13, 1~5: 대목205참조) 유대아인들에 대한 빌라도의 태도는 극히 조심스러웠다.
반면 유대아인들은 예수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용의주도하였다. 벌써 오래전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고 할수 있으면 유대아 관헌의 개입없이 돌로 치는 사형(私刑)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두번이나 실패했다. 돌로 쳐죽이는 사형은 레위기 24장 15~16절에 의거한 것이었다. 지금은 그들이 로마인들의 손을 빌어 정식으로 예수를 체포한 상태이고 형벌은 법적인 절차를 따라야 했다. 그런데 독립국이 아닌 유대아국에는 사형선고권만 있고 그 집행권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유대아 당국자들은 예수를 종교적인 이유로 체포했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렇지만 내심 예언자일지도 모르는 이 「의인의 피」를 자기들 손에 묻히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죽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끌고 온 것이다. 로마인들의 손에 처형되면 돌팔매질이 아니고 십자가형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방인의 손에 넘어가 죽을것과(마르 10, 31: 마태 20, 19: 루가 18, 32~33) 모세가 구리뱀을 높이 들어 사람들은 낫게 했듯이 당신도 땅에서 높이 들리어(요한 12, 34: 3, 14) 모든 사람들을 당신께 이끌것이라는(요한 12, 32~34) 예언을 하신바 있다. 그제 그 예언이 이루어 질 때가 왔다.
유대아인들은 예수를 총독관저로 끌고 갔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않았다. 그들은 오늘 저녁 과월절 식사를 해야 했고 이방인들과의 접촉은 부정을 탈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방인들과의 접촉에서 왜 부정을 타느냐 하는 문제는 여러가 논의가 있어나 이방인 집에 있을지도 모르는 누룩 때문이었을 것이다(신명 16, 4).
결국 빌라도가 밖으로 나와 그들과 말을 주고 받았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예수가 범법자라는 것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했다는 것과 스스로 왕이라고 하며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는 등 민중을 선동하여 반란을 도모했다는 점 등을 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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