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에서 신라 「원화」의 정기를 이어받은 처녀들의 배움터 근화(菫化)여고가 문을 연지도 32년. 그리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영남 동북부 지역의 명문 사학(私學)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근화여고는 새로운 교육환경에 적응하고 부상하기 위한 노력들로 바쁘기만 하다.
1963년 12월 현 교명으로 설립된 근화여고(교장=문현자 수녀)는 올해 29회 졸업생까지 1만1천여명의 동문들을 배출했다. 지난 93년 2월 30년간 사용해오던 경주 성동동의 옛 교사(校舍)를 떠나 지금의 자리(경주시 용강동)로 옮겨오면서 제2의 창학을 부르짖으며 명실상부한 여성인재 양성의 산실로 거듭나기 위해 교직원 학생이 혼연일체가 되어 땀을 흘리고 있다.
근화의 특징은 가톨릭적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과 입시교육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데서 우선 찾을 수 있다. 「대학진학을 위한 교육조건이나 과목들은 대부분의 다른 학교와 대동소이하겠지요. 다만 다양한 특별활동 클럽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소양과 예절을 익히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조직된 클럽은 32개에 달한다. 바둑 연극 미술 서예 등 취미 반에서부터 다도 수예재봉 꽃곶이반까지 다양하다. 물론 영어, 일어, 불어회화반, 컴퓨터반 등 학습과 직접 연결될 수 있는 클럽도 학생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외국어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도 돋보인다. 첨단설비를 갖춘 어학실습실을 상시 개방해 놓고 있으며, 교내 예술제 때는 영어연극제가 빠짐없이 메뉴에 오른다. 교사들에게는 생활영어학습을 위해 「닥터 위콤」(대화식 영어학습 기계)을 전원 지급하기도 했다.
생활영어를 익히기 위한 학생들의 「View클럽」은 선배들과의 연계를 통해 휴일 외국인 관광객 통역 안내에 나서, 봉사의 기회도 얻고 실습도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지난 6월 실시된 도내 고교생 외국어 경시대회에서 불어부문 대상과 일어부문 금, 은상을 휩쓴 결과로 나타났다.
근화여고는 올해 4년제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어섰다.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수준을 가늠케 해주는 잣대가 된다. 「지역민들이 갖고 있는 경주여고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있어요. 오래 전부터 우수한 학생은 경주여고에 가야 하고, 그 곳에 가야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인식이 깊게 박혀있지요」
김진광(바오로) 교감은 그러나 「역사적인 면을 봐서 이해는 가지만 지금은 교육여건 등이 많이 변했다」면서 「이점에 있어서는 이제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랑 순결 성실을 교훈으로 삼아 진리를 익히고 사랑을 실천하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참 모습을 갖추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앙인을 기른다」
이 같은 종교교육의 목표대로 가톨릭 교육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근화여고의 노력은 교내생활 곳곳에서 엿보인다.
매주 한차례 1ㆍ2년생을 대상으로 정규과목에 종교교육 시간을 배정, 운영하고 있으며, 신자학생들은 셀(Cell)활동으로 신앙을 나누기도 한다.
입시에 매달려 자칫 신앙에 소홀해지기 쉬운 3학년생들은 분기마다 이루어지는 「신자재교육」 시간을 통해 재충전의 기회를 갖는다.
10년째 지속되고 있는 일본 「데쯔까야마」고교와의 교류도 근화여고의 자랑거리. 매년 양교 학생 1백명씩 펜팔교류를 갖고 있는데, 8월경엔 근화여고가 일본을 방문하고, 10월엔 일본에서 방문단이 온다. 작년까지 데즈까야마고교 방문학생을 2명으로 제한했으나, 올해부터 8명으로 대폭 늘려 지난 8월 25일 일본을 다녀왔다.
문현자 교장수녀는 「일어가 우수한 학생을 우선 선발하다 보니 선의의 경쟁도 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되고 해서 교류학생수를 늘렸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세계화와 국제화에 대비해 온 학교측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학습방법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부단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건강한 여성을 길러 내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정오를 알리는 삼종과 교내방송을 통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삼종기도 소리가 교화(校化)인 「제비꽃」만큼이나 단아하고 안정된 「근화」의 자태를 느끼게 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