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지금 당장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느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믿는 순간 믿음의 은혜는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세상은 줄 수 없는 그 놀라운 은혜를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세속적인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속적인 축복이 담겨 있긴 하지만 그러나 믿음은 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믿음 때문에 고생스럽다 해서 걱정할 일이 아니며 기도한 내용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서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언제고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축복은 기어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강을 건너야 하며 높은 산을 넘고 또 어두운 굴속을 통과해야 합니다. 거기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제1독서(하바1, 2~3: 2, 2~4)에 나오는 하바꾹은 원래 유명한 예언자는 아니었습니다. 하바꾹서를 보면 중요한 메시지도 없습니다. 다만 의인은 신앙으로 산다는 것이 여늬 성서처럼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바꾹이 살던 기원전 7세기의 이스라엘은 의인들은 박해 받고 악인들은 설쳐 대며 세상을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신앙으로 보았을 때, 이 같은 사실은 대단히 큰 모순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상 받아서 잘 살고 악한 사람은 벌 받아서 못 살아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의 처사가 도무지 못마땅하기만 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억울함을 하느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때 하느님이 대답하시기를 「끝날은 반드시 찾아 온다. 쉬 오지 않더라도 기다려라. 기어이 오고야 만다. 멋대로 설치지 말아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높은 이상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것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가 지금 당장 주어진다고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결과는 서서히 이루어지되 마지막에 가서 완성이 됩니다. 따라서 세상이 혹 우리를 속인다 해도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주 겉으로 금방 드러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허무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자주 이 세상에서는 깊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마치 그분의 모습처럼 우리가 만지고 붙잡지 못할 때가 아주 많습니다. 바로 거기에 갈등이 있으나 또 바로 거기에 믿음의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다 소중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믿음을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능력이 주어지는 믿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어떤 야심을 채울 수 있는 힘이나 지혜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다분히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어떤 보상을 생각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엉뚱하게 대답 하십니다.
「너희가 아무리 내 제자라 하지만 너희는 종으로서 지금 당장 상 받을 생각을 말고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 끝까지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즉 밭에서 하루 종일 땀 흘리고 수고했다 하여 상을 기다리지 말고 다시 주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마지막까지 봉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 답답하고 짜증스러우며 지루하고 피곤합니다. 그러나 그게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고달픔을 미리 깨닫고 시련과 역경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은혜는 사실 그런 캄캄한 굴속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세차게 부는 강풍을 만나야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금은 뜨거운 불 속에서 정련이 되듯이 우리도 시련과 고통 속에서 순수한 믿음으로 성장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그 분의 뜻하심에 승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편견이나 아집, 또는 자존심이나 고집을 깨뜨려야 합니다. 신앙에 세속적인 야심은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의인은 진정 믿음으로 삽니다. 돈으로 사는 게 아니고 지식이나 권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하며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믿음에 의심이 생기고 하느님을 원망하며 주님을 외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진정한 은혜는 지금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은혜는 누가 뭐래도 믿는 그 순간부터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기다립시다. 시련의 강물을 마지막 건널 수 있을 때 우리는 참 은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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