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개강미사를 시작으로 서울대교구「민족화해학교」가 문을 열었다.오경환(가톨릭대) 신부는 10월 11일 첫 강의에서「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가톨릭 정신」이란 주제의 강의를 했다. 가톨릭 신문은 오경환 신부의 강의를 시작으로「민족화해학교」의 전체 강의를 요약, 지상 중계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 강의를 전달할 예정이다.
오경환 신부의「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가톨릭 정신」의 목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가톨릭 사회교리의 입장을 정리하고 가톨릭 교회가 추구하는 공동선의 본질을 고찰하는 것이다. 또한 그 목표는 가톨릭 교회가 남한에서만 아니라 통일한국에서 어떠한 경제체제가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가톨릭 교회와 경제질서」「극단적 자본주의 와 극단적 사회주의 체제」「사회주의 체제 배척」「고전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새로운 사태의 비판」등 소주제를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가톨릭 정신」 주제를 가톨릭 사회교리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다.
1995년 9월 2일에 국제경영개발연구원과 세계경영개발연구원과 세계경제포럼은「95년도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 국가경쟁력에 있어서 61.8점을 받아 올해 조사대상 48개국 가운데서 24위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중국도 포함되어있다. 수많은 경쟁력 지표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것은 정부의 경쟁정책과 정부의 산업간섭 지표였는데 한국은 정부의 경쟁정책에서는 46위 산업간섭에서는42위로 평가받아, 민간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영삼 정부는 국가의 규제완화를 한다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지나치다고 보인다.
사회교리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필요한 만큼」을 넘지 않기를 바라고 개인의 경제적 창의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규정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때에 한국의 정부는 보조성의 원리를 위배하고 있고, 경제적 창의성이라는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평가할수도 있다.
현재 극단적 자본주의체제는 존재하지 않고 극단적 사회주의 체제는 북한을 제외하고 거의 없어졌다고 보인다. 따라서 대부분 국가의 경제체제는 두개의 극단을 연결하는 연속선상 어느 지점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경제에 대한 국가 간섭의 관점에서 양극단의 중간점을 기준으로 삼을 때, 중간점을 넘어극단적 사회주의 편에기울어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앞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사회교리의 배척과 그 이유를 설명했고, 극단적 자본주의가 비판받을 점들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사회교리의 배척과 비판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새로운 사태」로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또한 극단적 자본주의가 어떻게 보완되어야 한다고 보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유재산에 대한 사회교리의 입장과 아울러 공동선의 건설을 위해 국가가 어떻게 어느정도로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보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 결론 부분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가톨릭 정신이 어떤 점에서 서로 비슷하고 또한 서로 상이한지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물론 앞에서 이미 말한 것과 중복되는 내용도 있을것이다.
첫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인간본성이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는 점에 일치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인간본성이 개조될수 없다고 보았던 반면에 사회주 의는 인간본성을 이타적이고 협력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가톨릭 사회교리는 인간본성을 개조할수 있다는데 매우 회의적이다. 그렇지만 인간본성에는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측면과 동시에 관용과협력과 이타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경멸받을 점보다는 칭찬받을 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사목헌장13항).
둘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현재의 인간본성 때문에 국가의 강제 규제가 필요하다는데 일치했다. 국가의 주된 기능을 억압과 구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영원한 인간본성 때문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세우기 위해 국가의 강제적 제약이 영원히 필요하다고 보았던 반면에, 사회주의는 인간본성이 개조 될 때까지만 국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사회교리에 의하면 국가는 이기심의 억제나 인간본성의 개조나 경쟁, 체제의 유지를 위한 억압세력이 아니다. 국가는 인간성장의 촉진, 불완전하나마 평화로운 분위기의 조성, 공동사업의 촉진을 위한 세력이다. 국가는 자본주의가 말하는 필요악도 아니고, 사회주의가 말하는 일시적 악도 아니다. 국가는 인간에게 필요한 악과 선의 혼합물이다. 사회교리의 언어를 빌리자면「정치 공동체(국가) 는 공동선언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 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고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된다(사목헌장, 74항).
모든 권위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위탁된 것이므로 국가의 권력은 필연적으로 제한된 것이다. 국가 권력은 단순히 통치자의 이익을 위해서나 혹은 정의와 인권을 침해하는 식으로 사용될수 없다. 국가권력은 또한 사회의 각 영역의 자율성에 의해 제한된다.
셋째, 계급적 갈등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가톨릭 사회교리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는 구별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계급들이 갈등할 수 밖에 없다는 견해에 일치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인 반면에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피지배계급의 도구이다. 양 체제는 이론상 으로는 계급갈등과 경쟁의 필연성을 주장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전력을 다해 갈등을 억제한다.
사회교리는 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갈등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계급은 서로 의지할수 밖에 없고 공동의 이해관계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협력하는 경향도 가진다고 본다.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과 경쟁이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면서도 사회교리는 계급투쟁을 선동하려는 계획을 반대한다. 반대세력을 파괴하고 싹 쓰러버리려는 시도를 단죄한다.
넷째, 국가와 시민사회나 경제와의 관계를 형상화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나 경제는 구별되고 국가는 경쟁원리 가 사회안에서 존중받고 보장되기 위해서 존재한다. 경쟁원리를 지키기 위해서만 국가는 시민사회와 경제에 최소한도로 개입한다. 반대로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는 구별되지 않는다. 국가의 책임과 감독을 벗어난 사회의 측면 은 있을수 없다. 따라서 경제만이 아니라 예술, 문학, 대중매체, 종교 그리고 가정까지도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사회교리에 의하면 국가와 시민사회와 경제는 구별되고 구별되어야 한다. 기업체와 노동조합을 포함해서 중간단체의 권리가 보호되어야하고 활성화가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종교자유와 경제의 창의성이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국가는 경쟁을 조절하고 유지하며 동시에 중간단체간의 협력을 촉진해야 하고 정직한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한다. 국가가 경제와 시민사회에 간섭하거나 개입할 경우에는 항상 보조성의 원리를 준수해야 한다. 진정으로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개입해야 한다는것이다.
교황청 문헌에서 줄기차게 강조된 것은 사회적 권위의 다원성과 중간단체들의 권리이다. 가장 흔하게 지적된것은 노동조합이고 노동조합의 권리이다. 국가와 중간단체의 관계는 그 유명한 보조성의 원리이다. 이것은 하나의 과업이 개인이나 작은 집단의 창의로 성취될수 있는 경우에는 그 과업이 개인이나 집단에 맡겨져야 하고 상위집단이 빼앗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이다.
중간단체의 자율과 권리에 병행하여 국가의 정당한 권력을 인정한다. 공동체의 복지나 공동노력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가가 합법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개입할 때에 국가의 개입에는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이나 「공동선의 성취에 필요한 정도만」이란 단서가 붙게 된다.
다섯째, 극단적 자본주의와 극단적 사회주의 체제가 경제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민주주의를 실천했다고 말할수 없다. 그러나 가톨릭 사회교리는 요한 23세의 회칙「어머니요 스승」(1961년)과「지상의 평화」(1963년)이후로 분명하게 경제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 절제된 복지정책을 지지하며 경제운영의 방향을 인간의 기본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면서도 그 권리를 재산의 보편적 목적성에 종속시키고 필요한 한도내에서 생산재산의 국유화도 지지한다. 또한 노동조합의 정당성뿐 아니라 노동자의 기업경영참여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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