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성서의 내용은 우리가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해야 적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했을 때 대화가 없다면 하느님과 우리 사이는 단절되고 맙니다. 「하느님은 그저 하느님이고 우리는 그저 우리」가 됩니다. 이를테면 끝장인 셈입니다.
어떤 부부가 있다고 했을 때 서로 말을 하지 않으면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대화가 없으니까 만나면 지옥입니다. 남편이 밖에서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불안합니다. 집에 들어가야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그렇습니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안절부절입니다. 남편 만나는 것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서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싫어도 대화를 해야 하며 억지로라도 말을 붙여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말을 하는 것하고 하지 않는 것하고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됩니다. 아무리 자존심이 상해도 대화를 하면 숨통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가시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세상이 닫혀지고 은혜도 묶여집니다.
제1독소(출애17,8/13)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반도에서 아말렉 사람들과 싸울 때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팔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모세가 팔을 들고 있으면 이스라엘이 전투에 이기며 팔을 내리고 있으면 싸움에 패하게 됩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나서서 모세의 팔을 억지로 떠받치고는 내리지 못하게 하루 종일 붙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세가 손을 들고 있다는 것은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기도를 그치면 싸움에 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을 내리지 못하게 모세의 팔을 붙들고 억지로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억지로라도 기도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것입니다. 기도는 그 자체로 은혜로운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어찌 보면 그분의 약혼자요 달리 말하면 그분의 핏줄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싸울 때는 하느님이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보다 오히려 하느님 당신이 직접 그 싸움에 개입하고 싶어 합니다. 당신과의 깊은 관계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해서 그분의 백성이 되었고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련과 역경에 시달릴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고생 하는 것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당신이 직접 그 사건에 나서 악의 세력에 대항하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고자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지 말고 부담 없이 그분 앞에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나가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은 또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당신께 가지고 나오는 것을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진정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도움을 청하면 그 자체로 그분께는 영광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억울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부당한 처사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또 누가 그녀의 대변인 노릇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단념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재판관에게 매달립니다. 이를테면「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매달립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습니다. 기도는 그처럼 끈질기게 매달려야 합니다.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모세의 경우처럼 억지로라도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하느님께 영광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복음에서 과부의 경우화 같이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적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인간의 자존심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1절 이하에 보면 가나안 여자의 믿음이 나옵니다. 그녀는 예수께 자기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으니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면전에서 거절했습니다. 그때 여인이 매달립니다. 강아지라는 천대를 받아도 좋으니 쓰고 남은 은혜라도 던져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겸손되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억지로라도 끈질기게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늘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그 자체로 은혜입니다. 따라서 힘들고 어려울 때 간절한 기도를 바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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