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가 밖에 나와 군중들앞에서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발견하지 못하겠소』라고 말하자 대제관들과 장로들을 위시하여 군중들은 예수를 고발하는 목청을 돋구었다.
빌라도는 예수를 되돌아 보며 “저 사람들이 너를 고발 하는 소리가 안 들리느냐? 「왜 한마디 변론도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예수의 무죄 변론이 있으면 자기는 그 편을 들어 이 사건에서 발을 빼고 싶었던것이다.
예수께서는『증오의 말들이 주위에서 들려오고 혀를 놀려 거짓말을 퍼붓습니다』라고 한 시편의 말씀을 생각했을것이다(시편 109,3). 빌라도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묵묵부답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거짓 고발에 대한 예수의 침묵, 이것은 성서에서 메시아. 고통받는 「주님의 종」의 징표이다(대목 346참조). 이러한 뜻을 모르는 총독 빌라도는 예수의 태도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유대아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빌라도 앞에서 예수가 정치적 선동자라는 것을 납득 시켜야만 했다. 그 선동은 무엇보다도 설교를 통하여 사상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선동은 갈릴래아 온 땅에 퍼졌고 심지어는 예루살렘까지 침범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사상범은 무장봉기보다 더 위험하다. 그들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자는 갈릴래아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아 땅을 돌아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치면서 선동하였습니다』.
피고가 갈릴래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빌라도는 이 사건에서 발을 뺄 방도를 즉각적으로 생각해 냈다. 갈릴래아는 헤로데 안티파스(인물, 인품에 관하여는 대목 75,100,102 참조)가 분봉왕으로 있는 영지였다. 그런데 빌라도는 갈릴래아인 집단 살해사건(루가 13,1: 대목 205)으로 인하여 헤로데 안티파스와는 좀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이제 빌라도는 자기의 재판권을 헤로데에게 양보함으로써 헤로데와의 관계개선도 도모하고 자기의 재판 불간여 의지도 관철하고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과월절 대축제때라 헤로데도 자기 영지에서 예루살렘에 와 머물고 있었다. 헤로데 안티파스의 예루살렘 궁전은 빌라도가 머물고 있던 안토니아 성과 대제관 가야파의 궁전 중간에 위치해 있다.
빌라도는 즉시 예수를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보냈다.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죽인후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를 한번 만나 보고 싶어한 사람이었고(루가 9,9) 예수라는 사람이 자기에게 이송되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하였다.
오랫동안 듣고 있던 기적을 행하는 예수에게서 기적을 직접 볼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것은 호기심에서가 아니고 예수가 정말 자기가 죽인 요한이 부활한 것이 사실인가 하는 의구심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그 동안 예수에 대한 소문 때문에 조금은 두려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죄인으로 자기 앞에서 있는것이다.
헤로데는 유대아인들의 지도자들처럼 예수께 대하여 종교적인 문제로 신경쓰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두서없이 물어 보았다. 심문이라기 보다는 수다를 떨었다.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필요없는 질문에는 침묵으로 대답하셨다.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았다.
헤로데는 예수를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였다. 때마침 예수 이송시 따라왔던 대제관들과 율법학자들의 소란스러운 고발이 뒤따랐다. 여우 같다(루가 13,32)고 비난받은 헤로데이다. 간교하고 악랄한 여우는 비겁한 자라는 뜻이다. (대목 212참조). 헤로데의 호기심은 멸시로 변하였고 자기와는 상관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것은 예수가 무죄라는 판단이기도 하였다. 자기에게 굴러 들어온 이 죄인에게 이 자가 할수 있는 일은 능멸의 행동을 하는 일뿐이었고 보낸 사람에게 되돌려 보내는 일뿐이었다.
그는 호위병들과 합세하여 예수를 조롱하였고 극장의 희극배우처럼 화려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다시 이송하였다. 예수가 무죄라는데 두 사람은 동의한 셈이고 이 사건으로 빌라도와 헤로데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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