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전을 처음 보았을 때 그 규모의 웅장함은 물론이고 성당기둥과 벽면을 가득 채운 수 많은 예술작품들을 보고 넋을 빼앗길 지경이었다. 전장 2백30m에다 6만명이 일시에 서 있는 넓이라니 거짓말 같다. 해마다 10월이면 이 성당에서 교황청립의 여러 대학들을 위한 개강미사가 교황님 주례로 열린다. 대성당의 위용과 더불어 유학중 교황님 미사는 처음이라 시종 설레는 마음으로 참례했다.
합창단의 멋진 화음에 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분명 고음의 아름다운 소프라노 소리는 들리는데 여성은 아무도 없다. 변성기 이전의 어린 소년들이 여성들 보다 더욱 고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연령도, 키도, 들쭉날쭉, 할아버지, 아저씨, 소년들로 이루어진 남성 합창단이 멋진 혼성 사성부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남성들만의 합창단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 소년들의 소프라노 목소리를 오래도록 보존시키려 변성기가 오기전 일찌감치 그들을 거세시켰다고 한다. 교회의 이러한 관행을 우리는 윤리적으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소년 본인은 물론 가족의 동의를 받았다면?
과거의 전통적 윤리학(윤리신학, 윤리철학)에서는 여러 종류의 윤리원칙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러가지 윤리적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들, 두가지 이상 가치들의 경쟁 때문에 확실한 윤리적 판단을 하기 힘든 경우에는 흔히 윤리원칙들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공식들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그것은 각 개별 경우의 윤리문제의 법적 해결에 윤리학적 관심을 쏟았던 당시의 경향(-결의론, 決疑論, casuistry)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원칙들에는 이중결과의 원칙, 전체성의 원칙, 예외의 원칙, 법문관해(法文寬解)의 원칙, 작은 악의 원칙, 더 큰 선의 원칙 등이 있었고 이 원칙들에 준하여 여러가지 구분(區分)원칙들이 성행하였으니 예를 들면 직접-간접, 본의적-비본의적, 능동적-수동적, 유책-무책, 통상-특수, 유익-무익 등의 구분이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윤리적으로 합법적이냐 비합법적이냐의 구분을 능사로 삼았던 결의론적 사고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 대신 참된 그리스도적 이사에 입각한 윤리적 삶의 전망과 그 소개에 중점을 두는 윤리신학의 경향이 등장함으로써 각종 윤리원칙들은 그 중요성을 차츰 잃어가서 오늘날 어떤 윤리신학 교과서도 그것들을 해설하고 그 적용 사례들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생명윤리의 학문적인 등장과 함께 윤리원칙들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었다. 생명윤리를 생명존중에 관한 정신문화적 계몽운동으로 규정하려는 경향에 반대하는 여러 생명윤리 연구소들은 생명윤리의 학문적 정립을 위하여 윤리원칙들에 새로운 눈길을 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위와 같은 전통적인 윤리신학의 원칙들에 대한 고답적 답습에 머무른 것은 물론 아니다.
만인 공유의 이성에 입각한 세계윤리(etica globale)로서의 생명윤리, 현대화 같은 종교적, 사상적 다윈 사회에서 만인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생명윤리의 학문적 기초에 고심하던 이들은 과거의 대표적 의학윤리 원칙중 하나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각종 의학윤리 헌장들에 이르기 까지 모든 의학윤리의 원칙들을 되새겨 보면서, 생명윤리는 오늘의 새로운 생명윤리의 문제들을 전통적 윤리원칙들에 적용하여 학문적 기초를 구축하는 작업이 아니라 생명윤리의 대상 , 영역에 이르기 까지 전혀 새로운 해석에 기초한 원칙들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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