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사람의 기도소리는 구름을 꿰뚫는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집회35, 17). 여기서『구름을 꿰뚫는다』라는 말은 겸손한 사람이 바치는 기도의 힘이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하느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겸손한자를 사랑하십니다. 다른 것은 다 못나고 어리석어도 그 사람의 어딘가에 겸손한 기운이 있으면 하느님은 그것으로 만족하십니다. 따라서 그의 죄가 얼마나 크고 많으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죄가 크고 많다 해도 겸손 하나로 그 모든 악행을 덮을 수 있고 또 건질 수 있습니다. 겸손의 힘이 그렇게 셉니다.
반면에 교만한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의 기도와 공적이 아무리 크고 많다 해도 그는 교만 하나로 모든 것을 다 무너뜨리게 됩니다. 많이 기도하고 많은 봉사를 하고 또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해도 그가 교만하다면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그처럼 겸손은 하느님을 얻고 교만은 하느님을 잃습니다. 오늘 성서의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파 사람은 모든 이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욕심도 적었고 부정직 하지도 않았으며 음탕하지도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두번이나 단식을 했으며 십일조도 꼬박 꼬박 바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자신이 의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행이었습니다.
겸손이 없는 선행과 덕행은 모래 위에 성을 싸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보다 어리석은 일도 없습니다. 좋은 일은 많이 하면서도 다 헐어버립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온갖 죄를 뒤집어 쓰며 살면서도 그의 어딘가에 겸손의 그림자가 있으면 그는 또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교만이 암적인 존재라면 겸손은 마치 불사약과도 같습니다.
오늘 세리는 저주 받아 마땅한 인생이었습니다. 보나 마나 손이 더러운 사람이었으며 동족의 피를 빨아 먹는 모리배였습니다. 그가 성전에 들어 가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거짓과 착취와 음행을 일삼았을 것입니다. 그는 누가 봐도 지옥에 빠져야 할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죄 많고 행실이 더러운 세리에게는 그의 어딘가에 조그마한 겸손이 보물처럼 감춰져 있었습니다. 자기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아니라면 그는 비참한 신세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떨구고 하느님의 용서만을 빕니다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습니다.
하느님은 진정 겸손한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사정없이 물리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자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우리 자신이 올라가 있다면 얼른 내려와야 합니다. 그것이 잘사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옛날 통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플라톤의 집을 방문하자 방안에는 화려한 양탄자가 깔려 있었습니다. 이때 디오게네스는 일부러 흙발로 방에 들어 가서는 양탄자를 마구 밟으며 『나는 플라톤의 교만을 짓밟는다』 하면서 외쳤습니다.
플라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플라톤이 디오게네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랬더니 방안에는 너덜너덜한 양탄자가 구멍이 숭숭 뚫린 채 걸레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이에 플라톤은 막대기로 그 구멍을 쑤셔 대면서『디오게네스의 겸손은 이렇게 구멍이 뚫렸다』하고 외쳤습니다. 이번에는 디오게네스가 그렇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이 그 성공을 길게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이 그 실패로 겸손할 수만 있다면 그는 다시 성공합니다. 또 성공한 사람이 그 화려한 성공에 불구하고 끝까지 겸손할 수 있다면 그 성공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겸손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교만에 얽매이게 됩니다. 교만과 겸손, 이들은 어쩌면 끝까지 서로 물고 늘어지는 라이벌이며 또한 앙숙입니다. 잡느냐 잡히느냐 하는 이들의 문제가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어쩌면 겸손 하나로 좌우되는 사람들입니다.
겸손합시다. 겸손하면 천하를 얻는 것이고 교만하면 천하를 잃는 것입니다. 올라 갔으면 내려가고 내려 갔으면 기뻐합시다. 바로 거기에 구름을 꿰뚫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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