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들이 하나 되어 공동체정신을 실현하는 것은 더욱 살기 좋은 사회 터전을 닦는 일이자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노력입니다.”
‘대전 민들레 의료생협’(이하 민들레 의료생협) 조세종(디오니시오·48) 이사장은 “특히 개개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마음의 건강도 갖춰야 한다”며 공동체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민들레 의료생협은 대전지역 사회적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상까지 수상하며 대외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이 민들레 의료생협이 지난 8월 24일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민들레 의료생협이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틀을 다지고 성장하도록 설립 이전부터 힘을 보태온 조 이사장은 대전지역 의료생협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이라고 하면 낯설어하는 이들이 많다. 생활협동조합은 소비자, 즉 지역주민들이 각종 생활관련 문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고자 자발적으로 연대한 공동체를 말한다. 그 중 의료생협은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병원을 만들고 공동으로 소유, 운영하는 의료공동체다. 덕분에 의사는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껏 진료할 수 있으며, 환자는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누리면서 건강권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소외계층 등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가장 인간적인 의료’로도 평가받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의료생협의 조합원이 되거나, 의료생협병원을 이용하면 좋은 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우선 실질적인 의료비를 절감하면서도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이러한 의료혜택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전지역에 자리한 민들레 의료생협도 과잉진료와 과도한 항생제 사용 등을 줄이고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민들레 의료생협이 지금과 같이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얻는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기도 했다고. 2002년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에 의료생협 병원을 열자 온갖 오해들이 이어졌다. 병원 운영에 동참하는 의료진들마저 의료생협을 ‘이상한 사이비종교단체’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조 이사장은 “처음에는 주민들의 의견 수렴뿐 아니라 의료진을 모집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다”며 “이 병원에 가면 잘 낫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가난한 지역에서는 수준 낮은 진료를 제공한다는, 좀 넉넉한 살림살이를 보이는 지역에서는 가진 게 많으니 웰빙 운운한다는 왜곡된 시선도 받아야 했다”고 토로한다. 환자들이 찾지 않아, 병원문을 닫게 되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는 여정이었다. ‘나에게는 무슨 혜택이 주어지느냐’고 끊임없이 따지는 주민들을 상대하는 일도 녹록잖았다.
발기인 300명이 뜻을 모아 문을 연 민들레 의료생협은 이제 2800여 명의 조합원이 힘을 모으는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최근엔 서구 둔산동에 내과와 한의원, 치과 등을 갖춘 두 번째 병원도 마련했다. 지역주민들도 민들레 의료생협이 운영하는 병원은 ‘정말 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조 이사장은 의료생협 설립과 운영 등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던 근간으로 가톨릭 사회교리 실현의 의지를 꼽는다. 그는 오랜 시간 본당 청년회와 교리교사회에서 활동하며 사회교리를 익혀왔다. 나아가 ‘가톨릭 노동 운동’의 공동 창시자인 도로시 데이가 지향한 공동·공유의 삶 실현에도 노력을 기울여왔다. 구체적인 노력의 하나로 이웃들과 함께 노숙자들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나눔을 이어가는 소공동체 ‘둘이나 셋’도 설립, 10여 년간 함께하기도 했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사무국장도 역임, 현재는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 이사장은 민들레 의료생협 설립 10주년을 기점으로 어린이들의 협동조합 체험 활동의 폭을 넓히고 조합을 이끌어갈 전문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할 계획을 밝혔다. 특히 조 이사장은 “앞으로는 우리 사회에서도 먹거리와 의료생협에 이어 ‘교육 생협’이 구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비뚤어진 1등주의 교육은 후세대의 삶을 더욱 메마르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최근 신자들이 교회를 찾아도 구체적인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닌 개개인 마음의 위로를 찾는 일에만 급급한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정작 내 삶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다는 말은 결국 핑계가 될 뿐입니다. 신자 개개인이 사회교리를 조금씩 실천하는 노력을 보인다면 이웃들과 더불어 더욱 긍정적인 삶을 펼쳐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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