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신앙학교는 잘 끝났나요?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게요.
얼마 전에 젊은 청년 두 사람이 저를 방문했기에 저는 대뜸 그들에게 ‘여름 신앙학교, 잘 끝냈니?’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는 웃고, 다른 한 친구는 그 친구 옆구리를 툭툭 찔렀습니다. 뭔가 말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고 살짝 꼬드겼더니 부끄러워하면서도 말해주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지난 5월 말부터 고학년 어린이 여름 신앙학교 2박3일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요. 6월 중순부터는 학기말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애를 썼어요. 특히 제가 맡은 프로그램은 둘째 날 저녁 불의 축제 뭐, 그런 시간인데 불꽃놀이와 모닥불도 피우면서 분위기 있는 밤을 보내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데요.”
그러자 옆에 있는 다른 친구가 거들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그날 저녁 식사 때부터 행사장에 소나기가 퍼붓는 거예요! 소나기라는 것이 좀 그렇잖아요. 오다가 안 올 수도 있고. 그런데 이 친구는 그 프로그램을 못할까봐 안절부절못하는 거예요!”
그러자 그 친구가 다시 말을 받아서 “사실 그때까지 제 생각으로는 비 맞고 행사하는 것도 추억이잖아요. 음, 모닥불이 꺼지면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면 되고요. 그런데 전체 행사를 담당하는 교감이 긴급회의를 열어 저녁 시간은 우천시 프로그램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데 어찌나 서러운지 그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행사장 뒤편에 있는 나무 뒤에 숨어서 엉엉 울어 버렸어요. 그동안 프로그램에 공들인 시간이 얼만데! 그런데 그런 나를 멀리서 신부님이 보신 거예요. 자초지종을 다 아시는 신부님은 제게 위안이 되는 말을 해주셨어요.”
저는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말이 귀에 들어오더냐’고 웃으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이 그러셨어요. 하느님 안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비록 자신이 잘 준비한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좋고 훌륭한 진행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그 프로그램의 진정한 완성도는 그 프로그램이 자기 생각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 바로 그것이 프로그램의 진짜 완성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눈물이 멎었어요. 사실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내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 누군가 참견을 하게 되면 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짜증 나고, 화를 냈어요. 그 신부님 말씀 때문에 펑펑 울다가 신 나게 웃었지요.”
어때요. 수고하신 모든 분들! 이제 행사의 마지막을 스스로 장식하셔야지요. 끝난 행사는 행사이고 그 행사를 통해 변화된 여러분의 삶, 그것을 하느님께 봉헌하셔요. 희로애락이 있던 행사를 통해 변화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셔요. 인생에서 소중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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