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가톨릭 노동청년회(JOC)와 가톨릭 농민회(JAC)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사실은 교회에서도 그러한 점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하고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가톨릭 운동’의 고유한 방향을 제때에 제시해 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의 이름으로 사회 불의는 고발했으나 ‘가톨릭 운동’의 고유한 방법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불의한 사회에 대한 ‘교회’의 선언, 비판, 고발, 투쟁은 목격할 수 있었으나, 평신도 사도직 수행이나 ‘가톨릭 운동’의 고유한 방법에 의한 활동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에 그러한 과거지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무리가 있지만, 그 문제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JOC와 JAC는 둘 다 ‘가톨릭 운동’ 단체입니다. 둘 다 교회의 사명 일부를 위임받아 수행하게 돼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JOC와 JAC는 ‘가톨릭’이고 교회의 ‘위임’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며, ‘지도신부’가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JOC와 JAC 회원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활동함과 동시에 교회의 활동으로서 교회의 활동답게도 활동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JOC도 좀 그렇지만 JAC가 안고 있었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이 분리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나머지 종교와 정치, 신앙과 노동, 교회와 사회, 교회활동과 사회활동이 (‘구별’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는) ‘혼동’됐거나 전자가 후자로 ‘환원’되기 쉬웠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JAC와 일반 농민회(또는 일반 농민운동)가 그 목적뿐 아니라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에 서도 ‘혼동’되었거나 전자가 후자로 ‘환원’되기 쉬웠다는 점입니다.
이는 그러한 운동에 종지부를 찍는 대신, 쇄신된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지 묻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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