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자문제는 영영 풀리지 않는 한국천주교회의 숙제로만 남을 것인가? 본보는 10월 전교의 달을 맞아「선교와 냉담」문제를 총체적으로 진단하는 특집을 시리즈로 마련한 바 있다. 여기서도 복음화의 최대 장애는 역시 냉담자 증가에 있음이 지적됐다. 이에 본보는 왜 한국교회가 그토록 많은 냉담자를 낳고 있는지, 그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는 방안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기 위해 현재 냉담중인 이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냉담에 빠진 그들의 고백을 통해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교회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함께 지혜를 모으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미연씨(가명ㆍ아녜스ㆍ35세)는 국민학교 5학년 때 친구따라 예배당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개신교신자가 됐다. 그러나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앞에 성당이 있었던 관계로 자연스럽게 가톨릭의 분위기를 접하게 됐고 자신의 종교적 심성이 개신교 쪽보다는 가톨릭 쪽에 더 많이 기울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언제부턴가 예배당에서의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는 길이면 텅빈 성당엘 들러 묵상을 하고 제대 주변을 서성이며 개종의 싹을 키워온 이씨는 대학 1학년때 드디어 예비자 교리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아서인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졸업후 우여곡절 끝에 지난 87년 가톨릭에 입교하게 됐다.
이후 이씨의 개종에 자극 받은 가족과 일가친척들의 갈등은 시작됐다. 개신교 신학대학 학생이었던 사촌 오빠의 『마리아교』『마귀교』라는 비방에 시달려야 했으며 개척교회 목사의 열성 등은 이씨의 개종에 따르려는 모친과 일가친척들의 심정을 혼란으로 몰고가기만 했다.
이씨 자신도 어머니를 포함해 일가친척들에게 굳이 개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오랜 세월을 두고 가톨릭 교회를 접해오면서 분명한 동기와 확신을 갖고 개종했지만 가족들이야 단순히 「거름지고 장에 가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개신교와 비교해 적응하기가 쉽지않은 가톨릭으로 무작정 개종한다는 것이 이씨가 생각하기엔 위험할 것도 같았다.
그러나 이것도 하느님의 뜻인가? 어머니를 포함해 이모와 외숙모, 사촌언니 등 6명이 영세하는 계기가 생겼다. 개신교의 고질적 병폐중의 하나인 분파싸움이 벌어지고 목사와 장로가 대립하는 것을 보고 말로만 사랑을 부르짖는 지도자들의 위선에 갈등을 느껴온 이들은 이씨의 삼촌이 대세를 받고 죽은후 장례를 치르는동안 신자들이 보여준 헌신적인 봉사에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6개월 예비자 교리를 받고 88년 가톨릭에 입교한 이씨의 모친과 일가친척들은 그러나 영세와 함께 적응에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개종자를 고려한 예비자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이들은 성모신심과 고해성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개신교에서 마리아교니 우상숭배니 하며 귀가 따갑도록 세뇌되어온 이들에게 성모상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또한 통성기도 등으로 직접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던 이들이 「다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신부에게 죄를 고백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많았다고 말했다.
둘째는 교회와 함께 제단체들이 지니고 있는 두터운 벽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아 빈첸시오회에 가입했던 이씨의 사촌언니는 『따돌림을 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개신교에서의 왕성한 활동에 비추어 막상 가톨릭 교회에서는 자신이 설자리가 없었다고, 기득권을 가진 신자들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성직ㆍ수도자등 교회 지도자들의 무관심을 들었다. 예비자 교리 6개월동안 한번도 진지한 대화시간을 가질수 없었고 영세후 가정방문은 물론 몇 년째 냉담하고 있어도 대모를 포함해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개신교 목사는 가정방문을 통해 기도를 해주는 것은 물론 집안의 경조사를 일일이 다 챙겨주고 심지어 식구들 생일날이면 어김없이 카드를 보내주는 등 정성이 대단했다고.
아무튼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주일미사는 빠지지않고 신앙생활을 해오던 이들은 이씨의 부친이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하는 것을 계기로 냉담길에 들어섰다. 가족들의 개종후 사업이 번창해 이웃의 부러움속에 살아온 이씨의 부친은 마음으로 영세준비를 해왔다. 그러던 중 89년 5월 공장을 증축하고 축복식을 가졌는데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 사고를 당했던 것.
이를 계기로 가족들은 『천사같이 좋은 일 하고 베풀며 살았는데 웬 날벼락이냐』며 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씨의 모친은 최근 들어 신앙을 되찾고 레지오 활동에 열심이다. 모친이 신앙생활을 재개하기까지는 이씨와 몇몇 신자들의 특별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여전히 냉담중에 있는 일가친척들을 보는 이씨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개신교는 신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개개인에 관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인도하고 있는 반면 우리 가톨릭 교회는 주일미사에 빠져도 누구 하나 관심 갖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이씨는 우리 교회, 교회내 단체, 신자 개개인의 벽이 너무나 두텁다 고 지적한다.
비록 교회가 신앙인의 집단이지만 인간적인 의지처를 잃게 되면 신앙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이씨는 당장 성직자나 수도자 혹은 평신도들이 냉담자를 찾아 나선다면, 그래서 그들이 인간적인 정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면 의외로 쉽게 교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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