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과 「통공(通功)교리」를 가르치는 가톨릭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즉 연도의 중요성과 그 효력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연도의 기원이라든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그동안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또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연도가 제각각으로 바쳐지고 있어 전국적으로 통일된 연도를 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본보는 11월 위령성월을 맞아 이러한 연도의 기원과 의미, 구조 등 전반에 관한 내용을 4회에 걸쳐 특집으로 꾸민다. 『연도는 죽은 이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라는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 연옥의 영혼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의 가치와 필요성을 재삼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연도의 기원문제는 두 갈래로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현행 연도의 내용상 기원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도가 갖고 있는 곡조, 즉 고유한 우리 가락의 출처에 관한 문제다.
앞의 부분은 한국에 천주신앙이 전래된 경우 등을 미루어 추적이 가능하나, 연도가락의 기원에 대해선 현재로선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다. 교회전통으로 구전(口傳)되어 오던 것이 채록되고 일정한 형태의 가락을 갖게 되었다는 정도이다. 물론 이에 관한 연구나 관련 글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서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성서적 근거와 연옥ㆍ통공교리와의 상관성, 한국교회가 자생적으로 탄생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고유한 우리의 연도가락에 대해 살펴본다.
성서적 근거
구약성서를 통해 볼때 죽은 이를 위한 속죄의 기도와 예배는 기원전 2세기경에 비로소 나타난다. 그전까지는 죽은 이를 위한 직접적인 경건행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옥교리와 연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되는 구약성서 구절은 마카베오 후서 12장 39-45절이다. 43절에 『죽은 사람을 위해 속죄의 제물을 바치고 기도하는 것은 죽은 이들이 죄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구절에 대해 『저자는 선한 삶을 산 사람은 기도와 예배에 의해 그들의 죄에서 깨끗해 질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연옥에 대한 가톨릭 교리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신약성서에 이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성령을 거스른 죄는 저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마태 12, 32)는 등 죄와 심판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이 눈에 띤다.(마태 16, 27:루까 7, 47:12, 47-48참조). 이러한 가르침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고,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도록 제자들을 부추겼다.
이러한 성서가르침에 의거, 초기교회때부터 죽은 이들을 존중하고 기념하였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미사를 드렸다. 교회는 또 죽은 이들을 위한 자선과 대사(大赦)와 보속도 권고해왔다.
교부들의 가르침은 이러한 전통이 의미를 갖고 유지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그들을 도와주고 기념하는 기도를 드립니다…죽은 이들을 위한 우리의 제사가 그들에게 위로를 준다는 것을 왜 의심하겠습니까. 주저하지 말고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드립시다』(성 요한크리소스토모 고린토전서 강론집).
『…이 구절로 보아 우리는 어떤 죄들은 현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지만 어떤 죄들은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성 대 그레고리오 대화집).
중세기에는 죽은 이를 위해 지금의 위령성무일도와 비슷한 기도를 바쳤다. 그러나 신자들이 하기에는 언어장벽으로 어려움이 많아 18세기경부터 신자들이 마련하는 가운데 현재의 연도도 구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연옥교의는 피렌체공의회(1438-1445)와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에서 확정되고 반포되었다. 초대교회때부터 교회전통으로 지속되어온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이 두 공의회를 기점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신자들을 위한 기도문의 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연옥ㆍ통공과의 상관성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연옥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교회 가르침에 의하면 연옥은 마지막 심판때까지 지속되며, 은총상태에서 죽었지만 모든 불완전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혼들이 자신의 용서 받지 못한 소죄나 잠벌을 속죄하며, 천국에 들기전 깨끗하게 정화되는 「다음 세계」의 상태를 말한다.
연옥과 연도의 효력에 관한 교의의 바탕으로 일치하고자 하는(하늘나라에서든, 연옥에서든, 이 세상에서든)모든 이들의 공동체성에 있다.
이는 곧 공동체 한 구성원의 행위가 다른 모든 구성원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연옥의 영혼들은 미사, 기도, 자선행위, 단식, 선행 등과 같은 활동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영(성령)안에서 이 세상 신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활동들은 연옥영혼들을 생명으로 가득 채우기도 하고, 나아가 그들의 선행과 기도는 연옥영혼들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선행의 결실은 누군가가 하느님께 간청할때 얻을 수 있으며, 그의 기도는 연옥에 있는 어느 한 영혼, 혹은 그들중 어떤 영혼에게라도 그 즉시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세상 신자들이 이러한 지향으로 기도를 바칠때, 이미 어느 정도 하느님께 가까이 가 있는 연옥영혼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그 영혼들이 정화과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게 하도록 하느님을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연옥의 실재와 연도, 통공교리의 요체이다.
한국천주교회의 연도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연도는 내용상「천주성교공과」(天主聖敎功課)에 기원을 두고 있다. 여기에 이태리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롱고바르디가 1602년 중국 소주(蘇州)에서 저술한 「천주성교일과」(天主聖敎日課)가 구성에 참고가 됐다.
「천주경과」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12년간(1771-1783) 중국선교 활동을 펼쳤던 모예(Moye, 1730-1793) 신부가 1780년경 저술한 한문본 기도서, 1837년 입국한 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공과편찬에 착수해 모예의 「천주경과」와 롱고바르디의「천주성교일과」두 책을 원본으로 내용면에서는 천주경과를 따르고, 구조는 천주성교일과에 따라 공과를 완성했다.
이후 앵베르 주교가 순교하자 이 공과는 최양업 신부, 다블뤼 주교 등에 의해 보완정리되어 필사본으로 보급되기 시작했고, 1862년경 목판본「천주성교공과」가 최초로 간행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연도가락의 기원에 관해선 몇가지 추측만 가능할뿐 명확히 밝혀진바는 없다. 그 가운데 하나가 최양업 신부 전교시대에 가락이 만들이지고 곡을 붙였을 것이라는 설(說)이다. 공과의 편찬과 최신부의 활동연대 등을 추적할때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가성직자단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며, 가장 신빙성이 없긴 하지만 『어쩌다 생성됐다』는 설도 있다. 이 모두가 단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오늘날의 연도가락이 서양에서 유래됐다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많다. 순수「우리 가락」임을 확인케해주는 내용과 증언들이 있다는 말이다. 십수년간 전국을 돌며 연도 채록작업에 헌신한 김득수씨의 말을 들어보자.
『처음「그레고리안」에서 태동했을거라 상상했지만 우리 연도의 (구성지게)꺾이는 부분은 서양 교회음악에서 나왔다고 보기가 어려웠다. 또 불교의 범패(梵唄: 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 가락이나 무당들이 하는 되놀이 가락은 우리의 연도와 매우 흡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특히 무속신앙에서 신을 부르는 노래가락은 연도의 호칭기도와 닮은 점이 많다』.
이런 연유로 김씨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적 배경안에서 연도가 자연스럽게 생성됐을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연도가 순 우리가락임을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증언.
『용소막의 상가(喪家)를 방문했을때 만난 92세된 한 노인이「어릴적 물장구를 치며 연도를 배웠다」는 증언을 해줬다. 태안반도 지역에서 만난 노인도 같은 증언을 해주었다. 이들의 증언은 바로 연도가 초기 한국천주교회내에서 생성되어 선조들의 입을 통해 전해내려왔음을 확인시켜주는 것들이다』.
이러한 연도가락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우선 서울내에서도 용산(성직자묘지)과 제기동, 청수골(청담동), 장안동(성너머 마장안), 동지기(동작동)등 4곳이 거의 유사하다.
이들 지역은 파주의 갈곡리에서 신앙선조들이 유입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갈곡리」는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국내 대표적인 구교우촌이자 김대건, 최양업 신부 후손들의 마지막 거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일원으로 용인과 바라니(태안반도), 공세리, 합덕ㆍ당진ㆍ서산 등지가 또 동일하다. 타 지역으로는 경북의 안동, 전북의 삼례, 강원도 홍천, 풍수원 등이 위와 동일한 가락을 보여준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그 맥을 같이 하는 곳으로 마산과 회원(경북 달성)이 있고, 제주와 전남지역이 또 비슷하다.
이를 통해 볼때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후손들이 이주하면서 집성촌(교우촌)을 이루었고, 연도가 구전될 수 있는 여건도 성숙됐으리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겠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나타내어 주는 연도가 초창기 한국천주교회의 전교 및 대사회활동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 이 부분은 외국교회의 사례와 함께 뒤에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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