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교구내 90, 91년 서품사제 19명을 대상으로 구약의 땅 이집트, 신약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실시했다. 10월 12일부터 21일까지 9박10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 순례는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사제들이 직접 찾아보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성서를 보다 구체적으로 묵상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데 있었다.
서울대교구 뿐만아니라 한국교회 처음으로 사목활동중인 사제들이 순례에 나섰다는 기록을 만든 이번 일정은 사제평생교육원이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보좌신부 교육 일환이기도 했다. 다음은 이주연 기자의 동행 취재기이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4대 문명발상지중 하나인 나일강 물결이 연상되는 이집트, 그러나 이곳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거대한 문명의 유산지라는 흥미거리 외에도 모세라는 인물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종살이에서 벗어났던 출애굽사건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발길이 머무는 곳이다. 순례의 첫 시작은 구세사의 정점, 바로 이 이집트였다.
교구 보좌신부들의 해외여행이 공식적으로 허락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 이번 순례에는 사제 11명 그리고 지도사제, 가이드, 취재기자로 구성됐다.
보좌신부들의 성지순례는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고 이스라엘 이집트 성지, 소아시아지역,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 지역 등 세가지 코스로 나누어 실시될 계획이다.
순례단은 10월 13일 오전 5시 45분 여명이 채 가시지 않은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첫날 순례의 최종 목표지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던 시나이산. 수에즈운하를 거쳐 약 4백km를 더 달려가야 하는 산간오지였다. 이 시나이산을 시작으로 순례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약속의 땅 이스라엘로 넘어가는 성서속의 경로를 그대로 밟을 셈이었다.
시나이 반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표고 2천 2백85미터의 시나이산은 출애굽과 직접 관련이 있다. 하느님의 발현장소로 출애굽기와 민수기 도처에서 언급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모세가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았던 산(출애 20,1~26), 큰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던 곳(출애 19, 14~18), 일명 호렙산이라고도 하는 시나이산의 등정은 새벽 1시30분에 이루어졌다.
정상에서 순례단이 맞은 일출은 그야말로 모나리자의 배경과 같이 이세상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신비한 광경이었다. 천천히 주위가 붉어지면서 떠오른 태양은 시나이산을 등정한 세계 각국의 순례객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순례단의 발걸음은 신약의 이야기들이 펼쳐졌던 이스라엘에 들어서면서 더욱 빨라졌다. 마침 이스라엘은 유대인 최대 명절 초막절 연휴를 맞고 있었으며 예루 살렘 정도 3천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온 나라를 들뜨게 하고 있었다.
최남단 에일랏지역에서 이스라엘 순례의 첫발을 내디딘 순례단은 사해 엔게디 꿈란 예리고 등을 거쳐 갈릴리 지방을 향하는 북쪽으로의 여정을 시도, 이 과정에서 사제들은「소돔」, 로마군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고 9백60명이 자살했다는「마사다 요새」, 사해,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숨었던「엔게디」, 「꿈란동굴」등을 눈으로 확인했다.
다음의 중요 행선지는 갈릴리 지역, 10월 15일 주일미사를 노을이 지는 갈릴리 해변가의 베드로 수위권성당에서 봉헌한 사제들은「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듯 했다. 자신들에게 부여된 사제직의 소명이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지역은 예수님의 활동상이 그대로 서려 있는 곳으로 이스라엘 남단의 삭막한 사막지방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평온함과 푸르름이 가득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됐던 젖과 꿀의 땅은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었다.
이스라엘 순례에서 큰 비중으로 다뤄진 예루살렘 방문은 이틀에 걸친 강행군으로 진행됐다. 사제단은 먼저 겟세마니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유대인 최대의 성지「통곡의 벽」이 있는 예루살렘 성전터로 향했다.
히브리어로「평화의 도시」라고 하는 이 예루살렘은 이름과는 다르게 인간의 야망ㆍ증오가, 뚜렷한 종교색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했다. 고대로부터 예루살렘을 둘러싼 전쟁이 그치지 않았고 그 긴장감은 여전하다. 또한 유대인들과 마호메트승천설을 믿으며 성지로 추앙하는 회교도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이 함께하는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순례단은 통곡의 벽에서 유대인들의 성인식 광경을 지켜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랍비 앞에서 경전을 읽어보이는 13세된 소년들의 모습과 이들을 지켜보며 축하와 격려의 사탕을 던지는 가족들의 모습은 율벌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었다.
비좁은 시장터로 남아있는 골고타언덕을 따라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 사제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참배한 후 다윗왕무덤,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성당, 성모 엘리사벳 방문 기념성당 등을 둘러보았다. 예루살렘 성전을 50분의 1로 축소해놓은 모형터와 함께 이스라엘 박물관을 방문한 순례단은 예루살렘 박물관을 방문한 순례단은 예루살렘 최대 유대인 회당「그레이트 시나고가」의 모습도 살펴보았다.
빡빡한 예루살렘 순례 일정속에서도 사제들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세 종교의 성지로 남아있지만 평화보다는 긴장, 각기 다른 종파들의 갈등, 다소의 번잡함,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참 종교의 모습이었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떻게 성장해야할지, 사제로서 가져야할 소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등등.
순례의 마지막은 이집트 카이로로 다시 돌아와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 고대 유물을 보고 박물관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잡혀졌다. 이 안에는 구카이로 소재 예수님 피난성당 순례 등이 포함됐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9박10일의 과정은 긴듯 짧은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천년의 세월을 단 며칠만에 훑어 본다는 면에서 격세감이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안의 인간 삶은 다름이 없기에 나를 반추해보는 여유는 충분했다.
「나 이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리라」「그물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귀국길에서도 내내 귓전을 울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죽음을 택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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