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한 다음 석방하려하오』라는 의사 표명을 빌라도는 두번이나 했다(루가 23, 16ㆍ22).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공소기각하겠다는 말인데 태형(苔刑)은 왜 가하겠다는 것일까?
빌라도로서는 태형을 가함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돌려 볼까 하는 술수였다. 로마법정에서 태형이라는 것은 가혹하였다. 죄인의 옷을 벗기고 기둥에 잡아 매달고 가죽 채찍으로 사정없이 때린다. 가죽 채찍끝에는 쇳덩이가 달려있다.
이런 채찍으로 몇 번만 맞아도 피가 흐르고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밖으로 드러 난다. 편태(鞭苔)는 몇 대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 편태를 하는자 마음대로다.
이러한 태형 집행인은 빌라도의 경우에는 그 졸개 병사들이었다. 빌라도의 명령을 받고 예수의 편태 집행의 임무를 받은 병사들은 예수를 총독 궁안마당으로 끌고 들어 갔다. 그곳은 병영 본부이기도 하였다. 부대 전체가 모여 들었다.
오늘 이른 아침 예수께서 대제관의 졸개들에게 손찌검을 당하며 갖은 악담을 들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병사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그 끔찍한 편태 광경을 생략했지만 병사들은 예수의 옷을 벗기고 매질한 다음 피투성이가 된 몸에 그들 나름대로 마련한 다른 옷을 입혔다.
그 옷은「클라미스」라고 하는 일종의 군복인데 오른쪽 어깨에서 줄로 매어 아래로 내려 뜨려 입은 짧은 망토였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에게 진홍색 망또를 입혔다.
이 진홍색 옷은 제왕들을 상징하는 옷인데 병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잡혀 왔다. 그래서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가시나무로 엮은 왕관을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왕홀(王笏)대신 갈대를 예수의 오른손에 들려 주었다. 다 찢어진 진홍색 망토, 가시관, 갈대지팡이 이 모습은 영락없이 조롱받는 왕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조롱하며 낄낄거렸다. 로마인들이 황제앞에 무릎을 꿇고 『황제 만세』(Ave, Caesar)라고 인사하며 존경을 바치던 것을 연상시킨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능욕을 다 받고 계신다. 그들이 조롱거리로 삼고 있는 이 분은 말없이 참아받으며 이 웃음거리가 진짜 왕이며 만왕의 왕이라는 존귀함을 만방에 알리게 될 것이다.
병사들은 갈대지팡이로 예수의 머리를 때리기도 하고 뺨을 때리기도 하며 심지어는 침을 뱉기도 하였다. 병사들에게 태형과 조롱을 받은 예수의 모습은 초라하다 못해 처참하였고 피투성이가 된 몸에 왕의 옷차림을 한 모습은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예수 자신은 이 고난속에서도 품위를 지켰고 불행을 겪으면서도 당당하고 자신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무력하게 우롱당하는 한낱 죄인이 이렇게 위대할 수가!
빌라도는 예수의 이 모습을 보고 예수를 살릴 생각이 더 굳어졌다. 이 모습을 유대인들에게 보이면서 무엇인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빌라도는 예수를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유대인들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자 이 사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소 보다시피 그를 처벌할만한 죄목을 나는 발견하지 못하였소』하고 마지막 호소를 하였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체포하여 정치범으로 몰아 자기에게 법적 처단을 내려 줄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한편 예수와의 심문과정에서 예수가 로마정부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어떻게 하면 이 사건에서 발을 뺄까를 백방으로 궁리하던 중이었다.
빌라도의 태도를 감지한 유대인들은 문제를 종교적으로 뒤섞어서 빌라도를 자기네가 뜻하는 방향으로 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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