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또 은미의 전화다. 이제 중3인 은미의 하루 일과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방과후 젊음의 집에 전화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매일같이 전화를 한다.
『은미구나?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니?』『네, 이제 밥먹고, 학원가야되요』『어떤 학원에 다니고 있니?』『피아노 학원요』『그럼 피아노를 잘 치겠구나』『잘 못쳐요. 엄마가 다니라니까 다니는 거예요』『그 다음은? 』『영수학원에 가요』『너무 힘들겠다. 그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별로 없겠구나』『네. 집에 도착하면 밤12시가 다되요. 그런데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요. 전 고등학교에 못들어 갈거예요』『그럼 왜 학원에 다니니? 』『그냥 엄마가 가라니까요. 오빠는 명문대에, 언니는 명문고에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전 그런곳에 들어갈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전 반에서 꼴등이거든요. 엄마는 제가 언니가 다니는 명문고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시지만 자신이 없어요.』
은미 아버지는 신문기자이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다. 집안 식구들에게 걱정이 있다면 은미가 성적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은미는 두렵다. 연합고사에 실패한 그날이.은미는 친구도 없다.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전화상으로는 예의도 바르며, 자신의 문제도 잘 표현한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대면하면 말이 없다. 그냥 말없이 앉아있기만 한다고 한다.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해 놓고는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러다 며칠후면 다시 전화를 걸어『미안해요. 수녀님』이라고 말한다. 어떤때는 맑고 명랑하다. 어떤때는 자신이 전혀 없는 목소리이다.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은미는 입시제도의 희생양이다. 은미는 은미만이 갖고 있는 다른 아름다운 선물이 있을텐데 성적이라는 기준에선 낙제생이다. 늘 비교를 당하면서 칭찬한마디 못들으며 자라온 은미. 그의 습관적인 말은 이것이다. 『죄송해요.전 자신이 없어요.안될거예요』깊어가는 가을,『또 시험을 망쳤어요. 전 진학 못 할 거예요』라며 울먹이는 은미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며「어떻게 하면 이런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갖도록 도울 수 있을까?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도록, 자신의 삶의 주역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하고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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