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일(가명ㆍ요셉ㆍ34세)씨. 비교적 젊은 나이에 중견 건설회사의 홍보담당 과장에 오를만큼 빠른 승진의 길을 걸어왔다. 가족은 홀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딸이 하나 있다. 조금은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보낸탓에 그에게 있어 경제적인 안정은 중요하게 다가왔고, 외아들로 외롭게 자라온 환경은 학교생활이나 사회활동에 있어 적극적인 모습을 지니게 했다.
그가 살아온 여러 환경적 요인과 그의 능력 그리고 회사의 요구는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그에게 정신없이 바쁜 직장생활을 요구해왔고 하나하나 일이 성취됨에 따라 그 나름의 행복에 젖어 왔다. 결과적으로 그는 빠른 출세(?)의 길을 걸어왔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한싸는「이게 사는 게 아닌데」「무엇을 위해 내가 이렇게 쫓기며 사나」하는 회의를 갖게 됐다. 또한 결혼과 함께 돌봐야할 처자가 생기고 이는 곧「내 일만이 아닌 가족과 함께」라는 시간적인 여유를 요구해 왔다
이런 삶의 변화를 겪으면서 그에게 큰 짐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신앙생활로의 회귀였다. 대학생 시절 교리교사회 운영문제로 담당 수녀와 대립한 후 발을 끊게 된 성당이 항상 가슴 한 쪽 구석에 앙금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수녀와의 대립으로 성당엘 나가지 않았던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지만 한씨의 신앙생활의 굴곡을 들여다 보면 교회의 무성의, 교회 제도의 허점, 일선 사목자의 무사안일, 개인의 교회에 대한 무지 등이 많이 엿보인다.
62년생인 한씨는 세례받은 연도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66년인가 67년쯤 어머니(골롬바)와 함께 유아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한씨는 모친과 자신을 스스럼없이「밀가루 신자」라고 부른다. 즉 정식으로 교리를 받고 원의에 따라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당시 교회를 통해 얻게 되는 구호품에 끌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어쨌던 하느님의 섭리로 세례를 받은 한씨는 벌이에 바쁜 어머니 보다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성당엘 다녔다. 얼마후 교회의 도움으로 비슷한 처지의 가난했던 사람들이 집단부락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한씨네 가족은 그 혜택에서 제외되는 사건을 겪게 된다.
살기가 힘들어 교회의 도움을 바라보고 입교했던 한씨의 모친은 즉시 성당과 멀어지고 지금까지도 교회에 대한 반감을 못버리고 있다고 한다. 공평하지 못했던 교회의 구호사업이 냉담자를 양성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자연히 한씨도 집단부락으로 이사간 친구들과 멀어지고 새 친구를 사귀면서 교회와 멀어지게 됐다.
비록 냉담한다는 의식을 가질 나이는 아니지만 약 10여년간을 교회와 무관하게 살아온 한씨.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릴때 부르던 세례명이 기억나 학적부 종교란에는 항상 천주교를 적어넣었다. 다행히 가톨릭계 중학교에 입학한 한씨는 종교부에 가입, 교회와 가까워지는 듯 했으나 서클활동 차원을 넘지못했다.
이후 개신교 재단의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한씨는 셀(Cell)에 가입하면서 성당엘 안다니고는 활동이 어렵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집에서 가까운 성당엘 나가게 됐다. 첫영성체 교리도 받지 않고 성체를 모시는 등 절차상의 문제를 나중에 발견하게 되지만 한씨는 자기의지로 신앙을 되찾고 열심히 본당과 셀활동을 해왔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는 교리교사로 열심히 살았으며 후배 교사들로부터 존경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교사를 그만두고서도 후배들의 자문에 응해 온 한씨는 어느날 교사회 담당 수녀가 교사회에 대한 자신의 영향권을 제거하기위해 험담을 늘어놓는 사실을 알고 회의를 느끼며 차츰 냉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변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교적을 찾게 되면 성당엘 나갈것 같습니다. 몇년전부터 교적을 찾기위해 몇몇 성당과 교구청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고 주변의 알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도 해결책을 얻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재개함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점을 한씨는 이렇게 말했다.
교적이 없는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게 뿌리가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쉽지 않다고 한씨는 말한다. 어떤때는 너무 어려서의 일이라 정말 자신이 세례를 받았는지 조차 의심이 들기도 한단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교리를 받고 영세할까도 생각중이란다.
『비록 죄인이지만 교회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지한 탓에 그 원인이 있겠지만 개인을 탓하기전에 교회에서 먼저 냉담자를 쉽게 돌아올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냉담자만을 상담하고 그 상담을 통해 모든 절차를 안내하는 기관을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으로 한씨는 냉담생활을 거듭해왔지만 지금은 다시 신앙생활을 하고싶은 간절한 원의를 갖고 있다.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고민하고 핑게를 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교회가 포용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씨가 쉽게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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