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는 어디서 유래되었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연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각 부분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이해해야 하겠는가 하는 것이 앞서 살펴본 주요 내용이었다.
이제 이러한 연도(행위)가 한국천주교회안에서「공동체의 일」로서 전교및 대사회활동에 미친 영향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 앞서 외국에서는 우리와 같은 연도가 있는지, 그들의 장례예절은 어떠한지 간략히 살펴보자.
외국교회의 사례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국에는 우리와 같은 연도가 없다. 고유한 우리 가락에 맞춰 바치는 연도는 한국에만 있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 혹은 단체로 상가(喪家)를 방문해서 연도를 바치는 모습도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럽교회의 경우: 죽은 이의 시신은 곧 시(市)에서 운영하는 공동 시신안치 장소로 옮겨져 안치된다. 장례미사는 시신없이 성당에서 따로 봉헌되며, 빈소에서는 미사없는 장례예절만 거행한다. 문상객들도 공동묘지에서 헌화하거나 고인을 추모하는 정도이고 우리처럼 길게 연도를 바치지는 않는다.
다만 성당에서 신자들이 모여 죽은이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는데 공동체적인 전례로서는 이것이 유일하다. 장례미사 후에는 간단한 식사를 함께 하는데 우리의 음복과 비슷하다.
전통과의 만남
『불란서 파리의 프란치스꼬회 수도원에서 탁월한 덕행으로「천신」이라는 별명을 얻은 한 수사가 죽었다. 며칠후 수도원 뜰에서 그의 동료 신학박사가 산보를 하는데 죽은 수사가 홀연 나타나서「선생님 저를 위하여 미사 세대를 드려주십시오. 저는 그때까지 연옥에 있어야 합니다」하였다.
박사는 놀라「형제여 당신을 위해 무슨 기구가 필요합니까. 당신은 그만큼 세상에서 모범수사였거늘 당신이 연옥에 있을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고 했다. 죽은이는「아 무섭도다. 천주의 심판이 이렇게 엄밀할 것은 누구도 생각지 못할 것입니다」고 말하였다』
이 글은 1937년판「가톨릭 조선」11월호에 위령성월 특집으로 실린 내용이다. 「연옥소방수동원령」이란 제목의 이 글은 이외에도 연옥에 관한 다양한 예화들을 열거하면서『연옥영혼들을 위해 다른 어떤 의식보다 성체조배나 매괴신공이나 선행이 훨씬 낫다』며『특별히 연령을 위한 기도에 총동원령을 단행하자』고 맺고 있다.
67년도에 나온「가톨릭청년」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신자들의 열성을 촉구한다. 『우리의 유일한 무기로 연령들을 도웁시다. 우리의 도움으로 승천한 영혼들은 천국에서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생을 두고 저들을 기억하며 조속한 시일내에 승천하도록 합시다』.
이러한 내용으로 미루어 일찍부터 한국천주교회 내에선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와 미사를 매우 중요시하였음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 할수 있다. 이같은 믿음과 전통은 신자들이 상가를 방문, 죽은 이를 위해 연도를 바치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는 활동에 정진케 했다.
상을 당하면 3일장을 치르기까지 궂은 일을 맡아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이때 사심없이 그 일을 도와주고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는 것은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참 신앙의 힘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는 결정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죽은 자의 몸을 씻기고 옷을 입히는 일, 입관에서 하관에 이르기까지 3일간 장지에까지 동행하며 바쳐지는 연도가 없었더라면 일반 서민들의 죽음은 더욱 쓸쓸했을지 모른다.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슬픔을 이겨내는 버팀목이 되어준 임종봉사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신앙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연도야말로 초기 천주교를 전파하는 가장 실질적인 활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랫동안 연도회에 몸담아온 한 신자는『어찌보면 상가를 돌보는 이같은 활동이 한국천주교회의 맥을 이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천주교는 초창기 계속되는 박해로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는 불행한 역사를 남겼다. 「제사」라는 전통(관습)과의 마찰때문이었다. 반면에 신자들의「상가돌봄」은 아무런 충돌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이어져왔다. 잘 짜여진 예식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죽은 이의 영복을 비는 교우들의 기도가 그들에게 위안을 주었고 헌신적인 봉사가 인간적인 고마움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볼때 연도행위는 천주교 신앙이 이 땅에서 우리 민족과 자연스럽게 만날수 있었던 최초의「접촉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기복 신부는『사별했을 때 유족들의 심리상태는 가장 인간적이고「열린」상태가 된다』면서 인생의 의미와 죽음을 되새기게 되는 이때야말로 하느님과의 통교가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고유의 정서, 심성에 뿌리를 둔 연도가락이 그 목적하는 바와 함께 우리 민족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 모른다.
현행 연도의 문제점
우리의 심성을 잘 드러내는 연도이긴 하지만 역시 많은 부분 개선될 소지가 남아있다.
우선 신학적으로 빠스카적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현행 연도는 연옥형벌을 면케하고 천국에 들게해 달라는 청원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옥불의 참혹함과 천주의 심판이 강조되고, 죽은 이의 죄악이 부각된다. 하느님의 자비로 속히 연옥을 면하고 안식을 누리기를 빌뿐이다.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인 통공(通功)에 관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죽은 이의 죄사함과 안위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빠스카신비에의 참여와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포함하는 형제들과의 통공이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2차 바티칸공의회도 전례헌장에서 『장례예식은 크리스찬 죽음의 빠스카적 성격을 더욱 명백히 할 것』과『각 지방의 환경과 전통에 밀접히 적응토록』제시하고 있다.
또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기도가 전혀 없는 것도 문제다. 이와함께 연도도임종-장례-탈상후 등 시기에 따라 다양한 기도문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의 연도로는 상중(喪中)은 물론이고 20년 30년 후에도 같은 기도만 되풀이 해야 한다. 죄의 사함과 천국행만을 빌면서.
따라서 죽은이를 위한 기도와 더불어 죽은 이와 함께 바치는 기도, 즉 하느님과 함께 이미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고 있는 그들과 함께 살게되기를 바라며 그들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죽은이에게 바치는 기도가 신앙생활의 더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유교전통에서 오히려 이런 의미가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구연도에 나오는 고어체 혹은 중국식 표기법도 고쳐야 할 부분이다. 이런 현상은 중국기도를 번역하면서 한자를 발음만 따서 한글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예들 들면「회수자」는 회개자, 독수자는 수도자 혹은 은수자를 지칭하며, 연옥도문에 나오는 방지거 원선시오 노렌조 등도 프란치스꼬 빈첸시오라우렌시오의 중국식 인명(人名)이다.
또 동신은 동정녀, 신사자는 천사를 일컫는 말이고, 「하휼하다」와「관유」란 말은 아랫사람을 불쌍히 여겨 너그러이 도와준다는 뜻으로, 신연도에는 단순히『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로 되어있다.
현재 연도가 각 지역별로 달리 사용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지만 전국적으로 통일된 연도를 정립하려는 시도 역시 시간을 두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어법에 맞지 않거나 혹은 옛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섣부른 개정통합으로 정작 중요한 우리 심성과 신앙의 합일이라는 틀을 깨트리는 우도 범하지 말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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