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하고 사회가 어려워 질수록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의 역할과 사명은 보다 명백해지고 뚜렷해 져야 한다. 특히 1995년 현재를 살아가는 평신도들에겐 이 사회를 바르게 이끌 책임이 더욱 촉구되고 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결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교회 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평신도들은 과연 어떤 모습과 생각으로 현실을 살고 있고 또 교회에선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가? 「제28회 평신도 주일」을 맞아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생각하고 있는 평신도의 위상을 각각 조명해 봄으로서 교회를 구성하는 절대다수의 평신도가 갖는 자화상은 무엇인지 진단해 본다.
◆성직자가 본 평신도 - 정월기 신부ㆍ서울 구로본동본당 주임
“지나친 사제의존 극복해야”
“사제가 다 해결해 줄 것” 탈피 절실
신자 잠재 역량 최대한 이끌어내야
『지금은 여러가지 면에서 과도기입니다. 평신도의 위상과 역할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역시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소공동체의 활성화와 확산을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는 정월기 신부(서울 구로본동본당 주임)는 한국 평신도들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여는데 평신도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목자 없이 스스로 복음을 이땅에 가져왔던 한국의 평신도들은 헌신적인 자세와 교회, 사제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또 제대로 교육되고 동기만 있다면 복음을 생활속에서 실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요』
최근「민족화해학교」나「사회교리학교」등에 몰리는 평신도들의 발걸음은 한국 평신도들이 복음적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열정을 대변해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적절한 사목적 배려와 가르침이 있다면 평신도들의 다양하고 풍부한 역량을 키워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부는 한국의 평신도가 떨쳐버려야 할「구태」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지나치게 사제 의존적인 태도와 수동적인 자세는 극복돼야 합니다. 사제가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무조건 의지하지 말고 조화안에서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에 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본당안에서 평신도의 위상과 역할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최근 본당 사목회장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본당이 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신부는 평신도의 참된 성장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도기를 넘어서야 이루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본당에서 총회장선거를 실시했지만 서로 안하겠다고 해서 결국 임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직 자체적 역량이 덜 축적됐다고 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앞으로 평신도들의 목소리가 교회안에서 보다 커지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정신부는 또「성당 중심의 신앙생활」에만 매달리는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신앙생활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 지지만 삶의 현장에서의 복음 증거가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신자들이 사회안으로 신앙을 확산하는데 미흡한 경향이 있어요』
이런 태도는 신앙과 생활의 유리현상을 가져온다. 하지만 정신부는 여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우스운 비유일지 모르지만 사제인 나 자신도 디스코장에 간다면 신부라는 사실을 일부러 드러내고 싶지는 않을 꺼예요. 하물며 일반 신자들은 더하지요』
따라서『신앙과 삶의 일치는 당연한 명제이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무조건 매도할 수는 없다』며 복음적 삶에 대한 확신이 있을때 자연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신부는『성직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은 일반 신자들 안에서 하느님이 드러날수 있도록 키워주고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며 그럼으로써『평신도들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도자가 본 평신도 - 김영자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신선ㆍ과감한 목소리 아쉬워”
소공동체 활성화 통해 교회참여 기회 넓혀야
주도적 역할 맡을 여건ㆍ교육 부족
「평신도에 의한 본당」주인의식 필요
『이웃사랑에 대한 열성과 신앙에 대한 열의는 높다. 그러나 평신도의 신선하고 과감한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서울대교구 서대문본당에서 평신도들과 함께 활발한 복음화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영자(보스꼬·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수녀는 소수 몇몇의 활발한 활동만으로 평가되고 있는 현재의 평신도 활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현재의 평신도 활동은 능동적인 것이 아닌 사제나 수도자에 의해 끌려가는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반 신자 아닌 사람들과 함께 세상안에서 살고 있는 평신도들은 사제나 수도자 보다 복음선교를 하는데 좋은 여건에 있으며 결국 평신도에게 있어서 복음선교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제나 수도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실에서는 평신도운동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을 인용, 복음전파가 평신도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의무라고 강조한 김수녀는 신앙이 세상안에서의 생활로 변화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복음화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세상안에서 직접 살아가고 있는 평신도들의 새롭고 신선한 시각은 교회활동에 큰 힘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제나 수도자에 의해 본당의 색깔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에 의해 본당 색깔이 정해질때 비로소 본당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김수녀는 평신도들의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여기서 평신도 주인의식은 바로 본당의 색깔을 평신도 스스로가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
『한국교회내에서는 평신도의 위치가 아주 애매모호 합니다. 교회로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요청받고는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나 이를 위한 평신도 교육이 현재로선 부족한 실정입니다』
성서 등 교리지식이 부족한 것도 평신도 활동을 가로 막고 있는 한 요소라는 김수녀는 신자들 스스로가「자격이 없다」「아는 것이 없어서」라는 말을 자주한다고 지적한다.
활발한 평신도 활동을 전개하는 신자들 조차도 올바른 평신도 활동에 대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수녀는 본당에서 소외받는, 평신도 활동의 중심축에 끼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많은 교회활동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가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김수녀는 초대 한국교회에서 나타나는 평신도들의 열성이 현재의 한국신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전제하고 지금까지의 평신도 활동이라고 인식되어온 범위를 뛰어넘는 새로운 평신도 활동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했다.
『평신도 활동은 소수에 의해서 주도되는 본당활동만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사회와 가정과 직장에서 자신의 몫이 무엇인지를 찾아 본당의 신앙생활을 그대로 사회생활로 연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올바른 의미의 평신도 활동입니다』
◆평신도가 본 평신도 - 이길웅씨<선교사ㆍ전 본당 사무장>
“자리만 채우는 존재로 전락”
맹목적인 순종ㆍ기도 등 신자의식부터 고쳐야
“3백65일이 평신도들의 날 돼야”
『평신도가 교회에서 무슨 위상이 있습니까?』
제28회 평신도주일을 맞아 교회안에서 평신도로서 갖는 자신의 위상을 묻는 질문에 서울 자양동본당 이길웅(사베리오ㆍ53ㆍ전 본당 사무장ㆍ선교사)씨의 대답은 단호하고 명료했다.
『최양업 신부가 오히려 김대건 신부 보다 더욱 훌륭한 일을 하고 교회를 위해 노력했는데도 최신부는 병사했다는 이유로 성인이 되지 못했고 김대건 성인은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순교했다는 이유로 최고의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지요』
이길웅씨는 평신도와 성직자의 삶을 최양업 신부와 김대건 성인의 삶에 비교해서 설명하고 싶다고 말하고 최양업 신부와 같은 역할이 곧 평신도의 참 모습이 아니겠는냐고 반문했다.
특히 이길웅씨는 3백65일이 평신도의 날이 돼야 하는데도 굳이 평신도의 날을 별도로 정해 놓고 있는것만 봐도 교회안에서의 평신도 위상은 아주 미미한 상태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평신도차원의 노력과 평신도를 보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의식변화를 촉구했다.
『많은 신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교리서만 외우는 존재, 성직자 수도자의 지시에만 수동적으로 응하는 존재, 교무금만 내고 성당 자리만 채워주는 존재로 변해버렸습니다』
물론 성당마다 넘쳐나는 신자들을 감당해 내지 못하는 현실이 신자들의 익명화를 부채질하고 본당과의 관계를 더욱 소원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은 아직 요원하다고 설명한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꼭 해야할 부분이 아닌 세무와 건축문제, 사회복지활동 등에 있어서는 교회안에 있는 수많은 전문 인력을 활용함으로써 성직자 수도자는 그 고유기능에 보다 충실히 할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해 주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길웅씨는 평신도의 위상을 거론하기전에 더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자신만의 구령(救靈)을 목적으로 맹목적인 순종과 기도, 몇가지 의무사항 실천으로 신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는 신자의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먼저 신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평신도 스스로 이러한 노력에 보다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 이라는 이길웅씨는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신자들에 많은 것을 전달해도 그것을 받아 들일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지 못한 것과 같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길웅씨는 평신도주일을 맞았지만 교회에서 평신도주일을 위한 행사라곤 평협에서 보낸 강론자료와 포스터만이 전부였지 본당 차원에서 그 흔한 평신도주일 행사 한번 하는 경우가 없다고 개탄했다.
사제성소나 수도성소 못지않게 가정을 이끌고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평신도로서 또다른 고유의 성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성직자 수도자들은 물론 평신도들도 함께 느끼고 인식할때 성직자-수도자-평신도로 고정화돼 가는 듯한 본당의 계급화(?)가 깨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교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이사회를 이끌어 가야할 책임을 지닌 평신도, 교회안에서 양성돼 사회에 파견돼야할 평신도가 교회안에서 조차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리만 채워가는 기능적 역할로 전락해 버린다면 사회쇄신을 향한 평신도의 역할은 공염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길웅씨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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