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체제는 우선 정치적 구조와 정치적 질서에 있어서 이질화되어있다. 남한의 경우 정부 형태는 권력이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귀속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해왔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따라서 합리적ㆍ법적 권위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실제로 남한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남한은 오랫동안 권위주의적 통치를 경험해왔으며, 1980년대 후반 이후를 군부 독재 체제로부터 민주주의로의「이행기」로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현재 남한의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異見)이 존재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민주주의의 원칙이 부정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북한은 자유민주주의의 형식적 측면과 부르조아적 속성을 비판하면서 「인민민주주의」 (People’s Democracy)원리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북한의 정치체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의한」 독재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대한」독재에 가깝다. 정치권력은 최고 지도자와 단일 정당이 독점해 왔으며, 정치적 반대에 대한 관용이 거의 전무할 뿐만 아니라 정치과정에 있어서 법적ㆍ합리적 절차는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남북한 체제의 차이는 체제간 업적과 효율성의 차등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는 국력의 일부를 구성한다. 물론 한 국가의 인구나 자원, 전략적 위치나 군사력을 제외하고서 총체적 국력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체제의 특성으로부터 기인하는 유형ㆍ무형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역량도 결코 배제될 수 없는 요소들이다. 먼저 남북한의 정치적 역량을 비교해 보면, 이념적 통합능력과 정치적 통제능력의 측면에서 북한의 상대적 우위가 발견된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상황적 변신을 거듭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이념적으로 일체화시키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유일 지배 체제의 구축을 통해 북한은 정책의 결정과 집행을 일사분란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참여라든가 인권의 측면에서 북한은 남한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비민주적 사회이다.
반면에 남한의 민주주의는 국가 중심의 이념적 통합이나 정치적 통제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다. 그러나「형식적 민주주의」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신장, 그리고 정치적 평등권의 상대적 확대라는 견지에서 볼 때 남한의 정치체제는 역사적으로 진보한 것이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확보되어 있는 한, 겉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갈등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정치적 구심력과 복원력을 스스로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끝으로 사회적 통합과 갈등의 측면에서 보자면 외형상 북한 사회가 남한에 비해 훨씬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사회관리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원주의 사회를 추구하는 남한의 경우 사회적 균열은 일상화, 다양화, 현재화, 그리고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남한의 사회적 균열과 갈등은 민주주의와 다윈주의라는 틀에 의해 제도화되고 관리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또한 사회갈등의 일상화는 역설적으로 그것에 대한 높은 면역성과 저항력을 제공함으로써 유기적인 사회통합을 위한 자율적인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감소하기 위한 국가 및 사회적 차원의 노력은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의 경우, 상대적으로 앞섰던 평등주의의 구현과 사회적 균열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금기에 의해 사회갈등은 일찍부터 약화되거나 은폐 혹은 통제 되어왔다. 그리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융합에 의해 사회 통합은 일차적으로 당ㆍ국가의 권위와 권력에 의해 실천되고 있다. 그리하여 복지사회와 시민 사회의 틀 속에서 북한은 외부적으로 고도의 통합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이다. 그러나 이것 은 결코 북한사회가 완전평등의 무 갈등 사회를 이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상 북한은 무계급 사회의 신화이면에 일종의 전근대적 신분사회를 구축하고 있으며, 사회의 구조적 분화 증대와 함께 경제적 침체상황이 지속함에 따라「빈곤의 평등」이 가속화됨으로써 사회적 갈등과 불안요소가 점차 증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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